에세이
대부분의 대학교에서는 영어 관련된 회화 수업이 필수 교양 수업으로 지정되어 선호와 상관없이 졸업을 위해선 이수해야 한다. 나는 영어를 읽는 건 몰라도, 듣고 말하는 건 정말 자신이 없어서 수강 신청을 하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내가 수업을 잘 소화하지 못할까 봐 긴장하며 수업을 듣곤 했다. 다행히도 원어민 교수가 따스하신 분이라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앞으로 남은 영어 수업도 이 교수의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하나 있었다.
이 교수는 수업을 진행하며 종종 학생들의 이해도를 확인하기 위해, 교과서에 있는 퀴즈를 직접 강단에 올라와서 컴퓨터로 문제를 풀도록 지시한다. 이 문장 하나만 읽어도 벌써 무서워질지도 모른다. 어느 날은 책상에서 퀴즈를 일찍 풀고 강단에서 다른 학생이 문제를 푸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교수는 옆에 학생을 바라보며 조금 틀린 것 같다면 표정과 감탄사로 힌트를 주곤 했다. 정말 재치 있는 교수라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힌트를 받았음에도 문제가 어려워 결국 틀리는 학생들이 꽤 있다. 물론, 문법을 좀 까먹은 나도 한 번은 문제를 틀렸던 기억이 있다. 교수는 학생의 답을 다 같이 확인하며 해설을 진행한다. 틀린 답이 보인다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답 또한 또 다른 답이 될 수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이 단어가 조금 더 괜찮은 답이 될지도 모른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틀린 문제를 친절하게 해설하는 모습을 보며 존경스러웠다. 무안을 주지 않으면서 틀려도 괜찮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 이후 그 수업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교수는 maybe, could, would 이런 단어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틀린 문제를 해설할 땐 더 빈번하게 사용했다.)
틀리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이해된다.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부분을 찾아내며 배우고, 그렇게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고 도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틀리면 뼈 아프고, 실망하고, 사회적 시선에 부끄러워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보완해야겠다는 동기부여뿐만 아니라, 틀려도 괜찮다는 따스한 위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틀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정답에 근접했다는 말도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