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착한' 성 상품화라는 거짓말

: 당신의 욕망은 소방관 제복 뒤에 숨어 있다

by 김장혀기

참 재밌단 말이죠. 대한민국은 '성 상품화'라는 단어만 나오면 다들 도덕 군자라도 된 양 발작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만큼 위선적인 집단도 없거든요. 누구의 노출은 '숭고한 예술'이고, 누구의 노출은 '사회적 타락'인가? 이 해괴망측한 이중잣대를 아주 쉽게 해부해 봅시다.


1. '기부'라는 이름의 도덕적 세탁기

몸짱 소방관들이 화상 환자를 돕겠다고 누드 달력을 찍으면 다들 박수를 칩니다.


왜일까요? 거기엔 '기부'라는 완벽한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달력을 사면서 자기최면을 겁니다. "나는 몸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일에 동참하는 거야."

이게 바로 위선입니다. 속으로는 근육을 즐기면서 겉으로는 도덕적인 척하는 거죠.

소방관의 몸이나 아프리카 BJ의 몸이나, 결국 '시각적 상품'이 되었다는 본질은 똑같습니다.


수익금을 어디에 쓰느냐는 나중 문제죠. 만약 성인 플랫폼 크리에이터가 수익을 전액 기부하면 그때부턴 '성스러운 방송'이 됩니까? 결국 성 상품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욕망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분칠해 주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2. 세련되게 속여주면 '문화', 대놓고 팔면 '천박'?

아이돌 포토카드는 어떻습니까? 수백 장의 앨범을 사게 만들어 겨우 손바닥만 한 사진 한 장 쥐여줍니다. 거기 담긴 게 아티스트의 영혼인가요?


아니죠. 기획사가 정교하게 보정하고 깎아낸 '성적 매력'입니다.


기획사라는 대기업이 세련되게 포장해서 팔면 **'팬덤 문화'**라고 치켜세우고, 개인이 방구석에서 카메라 켜고 팔면 **'사회적 해악'**이라고 침을 뱉습니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취향'의 차이입니다.

"대기업표 노출은 고상하지만, 개인 사업자표 노출은 저질이다"라는 논리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체 어떻게 말이 됩니까? 세련되게 속여주면 기꺼이 지갑을 열면서, 너무 솔직하게 "내 매력을 팔 테니 돈을 내라"고 하니 갑자기 선비질을 시작하는 꼴입니다.


3. 남자는 '변태'고, 여자는 '스마트한 소비자'인가

여기서 가장 역겨운 지점이 나옵니다. 남성이 여캠에게 별풍선을 쏘면 사회는 그들을 '루저'나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갑니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그 자체로 지저분하고 교정해야 할 병 취급을 하죠.


그런데 실제 시장의 '큰손'은 누구입니까? 아이돌 화보, 굿즈, 공연 수익을 견인하는 건 압도적으로 여성 팬덤입니다.


여성 소비자가 아이돌의 사진을 모으는 건 **'당당한 팬심'**이고, 남성 소비자가 여성의 매력을 구매하는 건 **'변태적 행위'**인가요?


실질적인 구매력은 여성이 훨씬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남성의 욕망만 '더러운 것'으로 낙인찍는 건 명백한 차별이자 이중잣대입니다.


4. "왜 네 마음대로 팔아?"라는 고약한 심보

왜 유독 온리팬스나 개인 BJ들이 욕을 먹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이 사회의 통제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소방관이나 기획사 아이돌은 우리가 정한 틀 안에서 움직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몸을 통제하며 돈을 버는 개인들은 통제가 안 되거든요.


특히 여성이 스스로 자기 성적 자본을 권력으로 만들어 직접 돈을 버는 꼴을 대중은 못 견뎌 합니다.


"어디 감히 시스템의 허락 없이 몸을 팔아?"라는 권위주의

"우리가 정한 방식대로만 노출해라"라는 오만이 결합된 결과물이죠. 기가 막힌 노릇 아닙니까?


결론: 위선을 멈추고 거울을 보라

성 상품화가 정말 죄입니까? 그렇다면 지금 당장 당신 방에 걸린 아이돌 포스터와 소방관 달력부터 불태우십시오. 그럴 자신 없으면 타인의 생존 방식에 도덕의 몽둥이를 휘두르는 위선부터 멈춰야 합니다.


기부라는 명분을 두르면 '숭고'하고, 개인이 먹고살려고 하면 '천박'하다는 건 논리가 아니라 억지입니다.

타인의 생계를 비하하며 얻는 그 알량한 도덕적 자위, 이제 그만할 때도 됐습니다.


도덕적 훈계질 하기 전에 당신의 카드 결제 내역부터 돌아보시라는 얘깁니다. 그게 최소한의 지성적 예의 아닐까요?



[함께 생각해요]

수익금을 기부하는 소방관의 누드는 **'착한 소비'**고, 생계를 위한 개인의 노출은 **'사회적 죄악'**입니까?

여성의 소비는 **'당당한 팬덤'**이고, 남성의 소비는 **'변태적 낙인'**이 찍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신이 믿어온 그 도덕이 사실은 '선택적 분노'는 아니었는지 댓글로 의견을 들려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몰아쓰는 방학일기.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