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쓰는 방학일기.3

가평 7대7: 여름이 우리에게 남긴 마법

by 김장혀기


그해 여름, 나는 조금 특별했다. 누나 따라 억지로 배우기 시작했던 웨이크보드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 시기였다. 바람을 가르며 물 위를 달릴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은, 어쩌면 여름을 더 사랑하게 만든 첫 번째 마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마법은, 친한 친구 일곱 명과 함께한 가평 여행으로 이어졌다.


20대 초반. 운전은 서툴렀고, 시간은 늘 부족했으며, 계획은 매번 즉흥적이었다. 웃돈을 주고 전연령 렌터카를 예약하면서도, 마치 인생의 첫 모험을 앞둔 탐험가처럼 두근거렸다. K5 두 대로 나눠 탈지, 아니면 스타렉스 한 대로 함께 움직일지. 그조차도 우리에겐 하나의 큰 회의 주제였다.


여름의 어느 주말 아침.

햇빛이 세상을 깨우기 전에 우리는 이미 이마트 앞에서 모였다. 장바구니엔 라면, 고기, 맥주, 아이스크림이 담겼고, 나오는 길엔 이마트 로고송을 차에서 크게 틀어놓고 주차장 아주머니께 장난을 쳤다. 출발부터 웃음이 가득했다. 그 시작만으로도, 이번 여정은 평범하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진성이형이 고른 가평의 한 펜션은, 내가 평소에 가던 풀빌라들과는 많이 달랐다. 빠지 3종 세트와 무제한 밥이 제공된다는 설명에 우리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그 모든 것이 진짜였다.


20평쯤 되는 넓은 방 하나. TV와 옷장, 그리고 푹신한 이불들이 구석에 정리되어 있었고, 다 같이 이불을 펴고 자는 구조였다. 처음엔 “이게 뭐야?”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편안했다. 수련회 같기도,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한 풍경.


짐을 풀고, 우리는 빠지로 향했다. 물속은 뜨겁고 시원했고,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웨이크보드를 탔다. 누나 커플 따라 연습했던 덕분에 실력을 뽐낼 수 있었고, 친구들의 놀라움 섞인 환호에 기분이 절로 들떴다. 조금은 자랑스러웠다, 그날의 나.




물놀이가 끝난 뒤엔, 기다리던 식사 시간. 엄청난 크기의 식당, 익숙한 된장찌개 냄새, 구워주는 고기, 무제한 밥. 정말 말도 안 되는 혜자 구성. 직접 불을 피우지 않아도 되고, 고기를 굽느라 번거롭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 있으면 되는 시스템에 모두가 감탄했다.

배가 부르자, 다 같이 바닥에 누워 30분 정도 낮잠을 잤다.


그때, 진성이형이 말했다.


“야, 아이스크림 좀 사러 가자.” 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 나섰다.


편의점 안. 또래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아이스크림 7개를 고르고 있었다.

진성이형이 살짝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쟤네, 우리랑 같이 놀면 딱 좋겠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남자애들이랑 왔겠지 뭐~”


그때 형이 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이스크림 7개, 여자 둘이 사러 나왔고, 남자랑 왔으면 남자가 나왔겠지. 그리고 7명이면 홀수잖아, 바보야.”


순간, 머리가 띵 했다. 우리는 얼른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소식을 형들에게 알렸다.

그중에 온라인에 능한 순진이형이 빠르게 펜션과 빠지 위치 태그를 검색했고, 놀랍게도 그 7명의 사진을 찾아냈다. 모두 여자였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DM을 보냈다.


“방금 편의점에서 봤는데, 저희도 7명이에요. 같이 노실래요?”



답장은 바로 왔다. ㅋㅋㅋㅋ 네! 같이 놀아요 ㅎㅎ



우리는 들떴고, 그녀들은 우리 펜션방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날 밤은 7대7의 작은 축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한 자기소개. 그러다 이내 단체 술게임, 웃음, 장난, 이야기. 모두가 편해졌고,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다.



그 넓은 방. 처음엔 불만이었지만, 결국 그 모든 우연을 가능하게 해준 공간이었다.



진성이형의 직감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아이스크림을 사러 나가지 않았더라면,
그날의 새벽은 어땠을까.


우리는 충청도에서 올라온 7명의 누나들과 함께
한여름 밤의 청춘을 불태웠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이건 그냥 가평 여행이 아니었다. 마치 한여름 밤, 청춘이 우리에게 내려준 짧은 마법 같았다.



지금 나는 서른한 살. 그때 이후로도 수많은 헌팅 시도를 해봤고, 나름대로의 방법과 타이밍을 연구하며 누굴 만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여름밤처럼, 7명이 우연히 7명을 만나 하나의 방에서 웃고 마주 보며 놀 수 있었던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냥 운이었다.

다시 시도해도 안 되는 종류의 확률.

어쩌면 인생에서 단 한 번만 허락되는, 청춘의 우연.



그 밤은 정말, 가능하지 않은 일이 가능해졌던 밤이었다. 그래서 더 마법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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