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쓰는 방학일기.2

졸업시험 후 첫 여행 : 모든 게 끝났고, 모든 게 시작될 것 같았다

by 김장혀기

대학 졸업시험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바르셀로나.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방감에 몸이 들썩였다. 형 셋과 나는 그동안 못 놀았던 걸 한 번에 몰아 놀겠다는 각오로 공항에 발을 내딛었다. 구엘공원, 공사 중이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밤늦게까지 문 여는 식당, 그리고 길거리 빠에야에 샹그리아까지.

영국과는 전혀 다른 리듬의 도시. 덥긴 했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그날도 그랬다. 해가 지고 나서 해변을 서성였다.

뭔가 허전한 기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젊은 피가 들끓고 있었다.

"우리 지금 여자 좀 만나야 하는 거 아니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군댔다.

유럽여행 카페, 인스타 해시태그, 한국 게스트하우스 수소문. 당시 동행 찾기란 동행 찾기는 전부 뒤져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누굴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할 것 같았다.

설레고, 부끄럽고, 복잡한 기분.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에서 딱 봐도 한국인 같은 누나 셋이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멀뚱히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였다. 그중 한 명, 팔다리가 말도 안 되게 길쭉한 누나가 다가왔다.

"한국 분이시죠? 춥네요. 자켓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늘 바람막이를 챙겨 다니던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네! 누나 드릴게요!"



그렇게 우리는 누나들과 클럽 투어를 시작했다.

첫 번째 클럽, 두 번째 클럽, 세 번째 클럽…

어느 순간부터 클럽의 불빛이 지겨워졌다. 그때 누나 중 한 명이 말했다.

"야, 그냥 해변 가서 맥주 마시자."

JBL 포터블 스피커 하나, 에스테렐라 맥주 몇 병,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밤.

우리는 백사장에 앉아 음악을 틀었다.

스피커에서 한국 노래가 흘러나왔고, 그중 시스타 노래가 나왔다. 놀랍게도 그 세 누나는 시스타의 거의 모든 곡에 맞춰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춤선, 각도, 박자감, 모든 게 정확했다. 마치 K-팝 공연을 해변에서 목격한 듯했다.



그날 이후였다. 난 시스타의 팬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시스타를 완곡한 세 명의 누나들 덕분에, 내 청춘에 한 페이지가 생겨났다.

그날 밤은 기억 저편에 묻힐 뻔하다가,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또렷하다.

음악과 바람과 맥주와 누나들. 그리고 시스타.

지금도 시스타 노래가 들리면, 그 바르셀로나의 밤이 눈앞에 펼쳐진다.

낯설고 뜨거웠던 그 여름의 감정이, 그대로 다시 밀려온다.



더 놀고 싶었다. 사실 우리 넷, 누나들은 셋.

어딘가 불균형한 숫자에 아쉬움이 남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내가 괜히 욕심을 부렸다.

옆 도시도 가봐야 한다며 일정을 무리하게 끼워넣었고,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이동해야 했다.

그러니까 그 밤은 아주 짧은 여운만 남긴 채 끝나버렸다.

바르셀로나의 밤은 그렇게 스쳐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짧은 밤이 자꾸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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