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86세대가 바라본 86 정치인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었나

by 건강한 오후

여의도는 지금 86으로 포화 상태다. 국무총리, 여당 대표, 청와대 참모까지—권력의 중심은 그들로 가득하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 권력의 정점을 차지했다. 386으로 불리던 그들은 486을 거쳐 586이 되었고, 이제 86으로 통칭된다.


그들은 최루탄을 맞았다. 곤봉에 쓰러졌다. 감옥에 갔다. 그 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나아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민주화 이후 그들이 선택한 길은 책상이 아니라 의자였다.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그 뒤 그들은 어디로 갔나. 그들은 거리의 구호를 학문의 언어로 바꿨다. 하버마스는 비판적 공론장을, 롤스는 정의의 원칙을 세웠다. 정치인이 된 이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적었고, 그들은 소박했다.


한국의 86은 달랐다. 학생운동은 여의도로 가는 지름길이 되었다. 최루탄 맞은 이력서는 훈장이 되었고, 감옥에서의 경력은 명예의 상징이 아니라 권력의 자산이 되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은 뒤로 밀렸다. 68 혁명 세대가 사상의 벽돌을 쌓아 올릴 때, 86세대가 한국 사회에 남긴 지적 서가는 빈약하다.


물론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68 혁명은 이미 확립된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일어난 문화적 반란이었다. 86 운동은 군부독재와 직접 맞서 싸운 생존의 투쟁이었다. 그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화는 이루어졌고,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달라야 했다.


니체는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86세대는 군부독재라는 괴물과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대통령도 갈아치웠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말속에는 위험한 오만이 숨어 있다. 자신들이야말로 이 나라 민주주의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착각. 그 착각이 권력욕과 결합하면 새로운 독재가 된다.


그들은 난공불락의 진지를 구축했다. 국회, 정부, 청와대, 당. 모든 요충지를 장악했다. 세대교체는 구호에 그친다. 이견은 배제된다. 86의 논리를 따르지 않으면 배신자가 된다. 말이 말을 덮었다. 목소리만 남고 이성은 사라졌다. 편을 가르는 깃발만 나부낄 뿐이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무너진다. 총칼을 든 독재자 한 명 때문이 아니라, 거울 보기를 잊은 집단이 모든 문을 걸어 잠갔기 때문에. 어느 칼럼니스트는 경고했다. "그들의 사익과 권력욕 때문에 민주주의의 공든 탑이 무너질 수 있다." 과장이 아니다.


86세대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무엇을 위해 싸웠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였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였나. 만약 후자였다면, 이제는 내려놓을 때다. 권력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는 법을 배워야 한다.


68 혁명 세대를 보라. 그들은 권력이 아니라 사상을 남겼다. 한국의 86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 권력 다툼의 역사만 남길 것인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말이 통하는 광장으로 돌아가라. 스스로를 성찰하라.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고, 공정성과 합리성에 기반한 공론장을 복원하라.


민주주의는 특정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끊임없는 경계와 성찰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 86세대여, 괴물과 싸우다 스스로 괴물이 되지 마라. 거울을 보라. 그리고 물어라. 지금 내 모습이 젊은 날 내가 꿈꾸던 그 모습인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지금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 속에 침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