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공간, 기억의 온실
혼자 사는 집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앨범을 발견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표지를 닦아내고 펼쳐보니, 어린 시절의 가족사진들이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나. 모두 함께 웃고 있던 그 시절의 사진들.
이상하게도 그때의 행복보다 지금 이 집의 정적(靜寂)과 공허함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이 집에서 혼자 살아온 시간이 길지만, 문득 묻게 된다. 그 시절의 온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금희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주인공이 낡은 온실을 수리하며 과거와 마주하는 이야기. 나는 그 소설 속 온실이 바로 이 집 같다고 느꼈다. 온실은 식물을 보호하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밀폐된 공간이다. 바깥공기는 들어오지 못하고, 안의 온도와 습도는 인위적으로 유지된다. 그 안에 갇힌 기억들은 썩지도 증발하지도 못한 채, 그저 멈춰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온실의 깨진 유리를 교체하고, 녹슨 철골을 보수한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수리하려는 것은 온실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시간이다. 되돌릴 수 없는 관계, 잃어버린 순간들. 수리라는 행위는 복원의 시도이면서 동시에, 결코 복원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혼자 남은 이 집에서 나는 조금씩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오래된 시계, 거실 장식장에 놓여 있던 가족사진들. 어머니의 옷가지는 모두 태웠다. 그것들을 치우면서 나는 깨달았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만, 그 물건들이 품고 있던 '시간의 밀도'를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혼자 사는 삶은 익숙하다. 성인이 된 후 쭉 혼자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이 계실 때와 돌아가신 후는 다르다. 같은 혼자 사는 삶이지만, 예전에는 언제든 찾아갈 곳이 있었고, 명절이면 돌아갈 집이 있었다. 지금은 그마저 없다. 이 집에서 혼자 저녁을 먹다 보면, 문득 이 공간이 너무 넓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린 시절 가족들이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던 식탁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의 낮은 목소리, 어머니의 웃음소리.
이 집도 나에게는 소설 속 온실 같은 공간이다. 주인공이 온실을 수리하며 발견하는 것은 단순한 구조물의 손상이 아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들과 다시 마주한다. 슬픔, 그리움, 후회. 그리고 어쩌면 용서. 온실은 그런 감정들이 숨 쉬는 공간이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어머니가 늘 서 있던 자리가 눈에 밟힌다. 아침마다 식탁에 둘러앉아 나누던 짧은 대화들. "늦겠다, 빨리 먹어라." "오늘 날씨 좋네." "저녁에 일찍 들어와." 그런 평범한 말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혼자 밥을 먹으며 나는 종종 생각한다. 이 공간을 어떻게 다시 채워야 할까. 새로운 가구를 들이고, 벽지를 바꾸고, 인테리어를 바꾼다고 해서 이 집이 다시 따뜻해질까. 아니면 이 공허함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내년이면 육십이다. 혼자 사는 삶이 익숙해진 것 같으면서도, 가끔은 여전히 낯설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온실은 완전히 수리되지 않는다. 어딘가는 여전히 금이 가 있고, 어떤 부분은 임시방편으로 때워져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온실은 여전히 그 기능을 한다. 식물들은 그 안에서 자라고, 계절은 바뀐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조금 위안을 받았다. 내 삶도, 이 집도 완전히 수리될 필요는 없는지도 모른다.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는 혼자 이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한 공간에 함께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다. 단지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요즘 나는 이 집을 하나씩 다시 꾸미고 있다. 책상을 새로 들였고, 베란다에 작은 화분 몇 개를 놓았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이 공간에 천천히 나만의 흔적을 남기는 중이다. 과거의 기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층을 쌓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수리의 방식이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상실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견디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온실을 가지고 있고, 그 안에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갇혀 있다. 하지만 그 공간을 완전히 허물거나, 완벽하게 복원할 필요는 없다. 그저 그 안에서, 그 기억들과 함께 살아가면 된다.
혼자 사는 집은 때로 너무 조용하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나는 천천히 나 자신과 화해하고 있다. 과거의 행복을 그리워하면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글을 쓰는 일은 그런 의미에서 나만의 수리 작업인지도 모른다.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문장으로 엮고, 그것을 세상에 내놓으며 나는 천천히 이 온실을 정돈해 나간다.
김금희의 소설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이것이다. 상처는 완전히 아물지 않아도 괜찮고, 기억은 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그것들과 함께, 천천히, 불완전하게 살아가면 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