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를 읽고
은퇴하고 맞은 첫 월요일 아침이었다. 전 직장에서는 어김없이 주간 회의가 시작될 시간. 문득 25년간 매주 참여했던 그 공간의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파란 프로젝터 불빛 아래 오가는 보고서들,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운 숫자와 그래프, 팽팽한 긴장감과 미묘한 기대감이 뒤섞여 있던 그 공기. 그곳은 나에게 일터 그 이상이었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 우리는 그 회의실이라는 성전(聖殿)에 모여 '분기 목표 달성'이라는 공동의 신을 영접했다. 팀장이 화이트보드에 '매출 120% 성장'이라는 계시를 적으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숫자가 가능한지 의심하는 것은 불경(不敬)에 가까웠다. '우리 회사', '우리 팀', '우리의 비전'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하나의 신도를 자처했다.
책상 위 명함 홀더에 꽂힌 회사 로고는 나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십자가와 같았다. 나는 그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였고, 그 안에서 안전했다.
모든 약속이 사라진 오후, 나는 『사피엔스』의 첫 장을 넘겼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묻는다. 힘도 약하고 이빨도 무딘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그의 답은 총이나 문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믿는 능력'이었다. 약 7만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은 눈앞의 사자가 아니라 '부족의 수호신'에 대해, 오늘의 먹이가 아니라 '조상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함께 믿을 때 현실이 되는 것들. 하라리는 이것을 '인지혁명'이라 불렀다.
침팬지는 서로 얼굴을 아는 150마리 이상 무리를 이룰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달랐다.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수천, 수만 명이 같은 신, 같은 국가, 같은 법, 그리고 같은 '회사'라는 이야기를 믿으며 거대한 협력을 이뤄냈다.
책장을 넘기다 멈췄다. 내가 다녔던 회사도 그랬다. 수백 명의 동료 대부분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했지만, 우리는 '회사의 성장'이라는 공동의 이야기를 믿으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였다. 25년간 나는 하나의 정교한 신화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그렇게 사는 존재였다. 문제는 그 신화가 끝난 뒤에 시작되었다.
은퇴 후 첫 월요일 오전 9시 5분. 회의실의 누군가는 내 자리에 앉아 내가 관리하던 숫자들을 보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명함도, 직함도, 따라야 할 목표도 없는 그냥 '나'였다. 25년간 내 삶의 좌표였던 이야기가 사라지자, 남은 것은 막막한 정적과 텅 빈 시간뿐이었다.
하라리는 경고한다. 인간은 의미의 진공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고. 의미는 언제나 공동의 이야기에서 나온다. 종교가 약해지면 민족주의가, 민족주의가 힘을 잃으면 자본주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믿어야만 하는, 이야기의 동물이다.
창밖의 고요한 주택가를 바라보며 문득 서늘한 질문과 마주했다. 거대한 이야기에 기대지 않고, 나는 과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책상 앞에 앉았다. 처음에는 텅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한 의무감에서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작은 의식이 생겼다. 아침 커피를 내리며 창밖을 보고, 『사피엔스』의 한 구절을 필사하고, 그날의 단상을 노트에 적는 것.
하라리가 말한 '상상의 질서'는 국가나 종교처럼 거대할 필요가 없었다. "내일 아침 다시 이 책상에 앉아 글을 쓰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 또한 하나의 이야기다. 그 작은 믿음이 나를 다시 움직이게 했다.
깨달았다. 25년간 나를 움직인 것은 회사의 비전이기도 했지만, 그 이면에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싶다'는 나 자신의 성장 신화가 있었다. 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 나를 증명하고, 숫자로 성과를 만들려 했던 모든 노력은 결국 나만의 서사를 완성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제 나는 외부의 거대한 신화 대신, 내 안의 작은 이야기를 믿는다. 매일 아침 책상에 앉는 성실함을,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어내는 인내를, 이름 모를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작은 용기를 믿는다. 이것들이 모여 나의 새로운 신화가 될 것이다.
7만 년 전 우리의 조상이 동굴 벽에 첫 그림을 그렸듯, 오늘 나는 나의 노트를 펼친다. 회의실 화이트보드에 적히던 거대한 목표는 없지만, 내 손으로 써 내려가는 이 작은 문장들 속에 나의 우주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