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옆에 그늘막이 서 있다. 갈색 쇠기둥, 초록색 천막, 녹슨 볼트와 갈색 플라스틱 덮개가 붙어 있다. 뜨거운 여름, 이것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그늘을 드리웠다. 단 하나의 임무를 수행했다. 기계는 말이 없다. 여름 내내 펴지고 접히는 운동을 반복했을 것이다.
햇볕이 누그러졌다.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늘막은 이제 접힌 채 봉인되어 있다. 그늘을 만들었던 긴 팔은 걷히고, 딱딱한 기계 장치만 남아 횡단보도를 지켜본다. 나는 기계의 차가운 겉면에 시선을 둔다. 쓸모를 잃은 사물은 낯설다. 기능이 사라진 자리에는 잊혔던 물질성만 남는다.
여름 내내 이것은 햇볕과 맞섰다. 따가운 햇살을 받아내고,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주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펴졌다가 접혔다. 그 수고로운 시간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늘 아래 서서 햇볕을 피하는 일에만 급급했다. 사물의 노동을 보지 못했다.
가을의 찬 공기 속에서 그늘막은 쉬고 있다. 접힌 팔은 더 이상 펴지지 않는다. 임무를 마친 기계는 조용하다. 이제 그늘막은 그저 기둥으로 서서, 가을 공기를 마신다. 낙엽이 쌓이는 것을 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물도 쉼이 필요하다. 여름 내내 펴지고 접히며 견뎌낸 금속과 플라스틱, 그 단단한 물질들도 피로를 품었을 것이다. 쉼은 무용함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 이후에 허락된 침묵의 시간이다.
나는 접힌 그늘막 앞에 선다. 더 이상 그늘을 만들지 않는 사물 앞에서 나는 생각한다. 삶은 때로 목적과 기능만을 보며 달리는 노동이다. 그러나 그 노동의 시간이 지난 후, 우리는 쉼의 의미를 배운다. 쓸모를 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세계를 지켜본다.
그늘막은 여전히 침묵한다. 그러나 그 침묵은 허무가 아니다. 수고를 마친 사물의 고요함이다.
늦가을 횡단보도 앞에 서서 나는 묻는다. 나는 언제쯤 쉴 수 있을까. 임무를 다한 후, 조용히 서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