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틈에서 맨드라미가 피었다. 붉었다.
누가 씨를 뿌렸을까. 아니면 바람이 날라다 주었을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꽃이 기어이 붉게 피어났다는 것이다. 흰색도, 노란색도 아닌, 붉은색. 타협 없는 색. 콘크리트가 허락한 좁은 틈에서, 이 꽃은 가장 강렬한 색을 선택했다.
나는 그 앞에 한참을 섰다. 왜 하필 이 틈에서, 왜 하필 이 색으로 피어야 했는가.
콘크리트는 차갑다. 빗물을 흡수하지 않고, 햇빛을 품지 않는다. 아스팔트와 벽돌과 회색 건물들이 둘러싼 이 도시에서, 틈은 공간의 허용이 아니라 생존의 경계다. 절망의 단면이다.
흙이 없다. 양분도 없다. 뿌리내릴 공간조차 간신히 확보된 곳. 이곳은 꽃이 자랄 곳이 아니다. 하지만 맨드라미는 여기 있다. 뿌리를 내렸고, 줄기를 세웠고, 잎을 펼쳤고, 마침내 붉은 꽃을 피웠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꿈을 키울 여유는 없고, 생존만이 급하다. 콘크리트 같은 현실이 우리를 둘러싸고, 틈새 하나 찾기 어렵다. 그 좁은 틈에서조차 우리는 뿌리내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싸운다.
꿈은 안락한 밭에서 자라지 않는다.
온실 속 꽃은 화려하지만 약하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쓰러진다. 그러나 틈에서 자란 꽃은 다르다. 콘크리트를 뚫고 올라온 뿌리는 어떤 것보다 단단하다. 결핍 속에서 키운 줄기는 쉽게 꺾이지 않는다.
맨드라미가 붉은 이유는, 그것이 생존을 넘어선 선언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꽃이다.' 이 선언을 위해 맨드라미는 모든 에너지를 붉은색에 쏟아부었다. 타협하지 않았다. 회색 도시에 회색 꽃을 피울 수는 없었다.
꿈도 마찬가지다. 절대적인 결핍 속에서, 억압 속에서, 틈 속에서 키운 꿈만이 비타협적인 색을 갖는다. 안락함 속에서 키운 바람은 꿈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다. 진짜 꿈은 틈에서 자란다.
씨앗이 꿈을 틀 때 필요한 것은 흙이 아니라 햇빛이다. 아무리 좁은 틈이라도, 햇빛만 닿으면 씨앗은 싹을 틔운다. 우리에게도 그 틈새의 햇빛이 있다. 그것을 찾아 뿌리내리는 것, 그것이 꿈을 키우는 일이다.
콘크리트를 뚫고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고독한 비타협이다.
누구도 응원하지 않았다. 누구도 물을 주지 않았다. 맨드라미는 혼자 버텼고, 혼자 자랐고, 혼자 피었다. 틈에서 피어난 꽃에게 기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것은 가장 혹독한 조건에서만 허락되는 생의 선언이다.
나는 은퇴 후 글을 쓴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쓴다. 좁은 틈에서 뿌리를 내리듯, 나는 매일 단어를 쌓는다. 콘크리트 같은 무관심 속에서, 나는 기어이 붉은 문장을 만들어낸다.
틈에서 피어난 꿈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하다. 누가 뽑아도,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그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당신의 틈새에는 어떤 붉은 꿈이 피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