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을 벗지 못한 세대

『총, 균, 쇠』를 읽고

by 건강한 오후

1부. 보이지 않는 교복, 시대의 지리


진주에 있는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모인다.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1기수 선배의 단골 식당에서 만났다. 1980년대 중반, 우리는 교복 자율화 첫 세대였다. 획일적인 통제에서 벗어난 듯했지만,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복 대신 '시대'라는 보이지 않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입학 첫날, 우리는 불어반과 독어반으로 갈렸다. 2학년이 되자 문과와 이과라는 더 큰 두 개의 대륙으로 나뉘었다. 당시의 지형도는 이과 6반, 문과 4반. 산업화 시대의 '기술 우대'라는 좌표가 선명했다. 가장 확실한 길은 안정과 기술이었고, 나는 그 길을 택해 지방대 공대에 진학했다.


40년이 흘러 다시 만난 우리들의 삶은, 고등학교 시절의 그 작은 분기점들이 얼마나 거대한 격차를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지도가 되어 있었다. 수도권 명문대 출신들은 대기업의 중심부에 남았지만, 나처럼 지방 공장과 중소기업을 전전하던 이들은 조용히 퇴장하고 있었다.


맥주잔을 기울이던 누군가 말했다. "결국 그때 의대 간 놈이 승자야. 노력도 노력이지만, 운이 따랐던 거지."


그 말은 우리 세대의 운명을 한 줄로 요약하는 문장이었다. 마음속으로 되물었다. 그것이 정말 개인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그어진 '지리'의 결과였을까? 우리는 교복은 벗었지만, 시대가 강요한 진로라는 교복은 끝내 벗지 못했다.


2부. 직업의 '총, 균, 쇠'


그 불편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다시 펼쳤다. 이 책은 인류 역사의 불평등이 인종의 우월성이 아닌, 대륙의 형태라는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핵심은 유라시아 대륙이 가진 '동서축'의 이점이었다. 동서로 길게 뻗은 유라시아는 비슷한 기후대 덕분에 작물과 기술이 빠르게 전파되고 축적될 수 있었다. 반면, 남북으로 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기후대가 달라 확산이 더뎠다.


이 논리를 1980년대 우리 세대의 '직업 지리'에 대입해 보았다. 우리 세대에도 동서축과 남북축이 있었다. 의학이나 법학 같은 전문 분야는 마치 '동서축'의 밀처럼 시대가 바뀌어도 그 지식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축적되었다.


반면, 나처럼 현장에 투입된 기술직의 삶은 '남북축'과 같았다. 당시 우리는 "공대 나와 기술 익히면 평생 먹고산다"라고 믿었다. 실제로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기술 입국'을 외쳤고, 우리는 그 시대의 총아였다. 하지만 IMF 외환 위기라는 거대한 '기후 변화'가 닥쳤을 때, 구조조정의 칼날은 가장 먼저 우리를 향했다. 우리의 기술은 특정 산업에 종속되어 다른 영역으로 전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도체 기술자는 조선소에서 쓸모없었고, 자동차 기술자는 IT로 쉽게 전환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가졌던 기술은 시대가 잠시 빌려준 도구였을 뿐, 온전한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3부. 출발선이라는 우연


25년간 나는 성과주의자였다. 승진과 연봉 인상이 오직 나의 노력과 능력의 대가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의 질문 앞에서 그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1967년에 태어나 86학번이 되었다. 90년대 초중반, 한국 경제의 성장기 끝자락에 사회에 진출했다. 만약 몇 년만 늦게 졸업해 IMF 한복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어땠을까? 이 모든 것은 내가 통제할 수도, 선택할 수도 없는 우연의 영역이었다. 나의 성실함은 주어진 조건 위에서 피운 꽃이었을 뿐, 그 조건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벤처 붐에 뛰어들었다 외환 위기를 견디지 못한 친구, 대기업에서 밀려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 친구. 그들은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시대의 남북축' 위에서 고군분투했을 뿐이다. 나의 안온한 은퇴가 누군가의 좌절이라는 불평등한 지리 위에서 가능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자각은 나를 무력하게 만들기보다, 겸손하게 만들었다.


4부. 우연을 인정하고 책임을 선택하다


오늘도 자전거를 타고 남강의 다리를 건넌다. 이 강도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장벽이었을 것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처럼, 이 강의 이쪽과 저쪽도 누군가에게는 운명을 가른 경계였을지 모른다.


나의 평온한 삶이 내가 더 유능해서가 아니라, 단지 '우연의 지리'에서 조금 더 유리한 쪽에 서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된 후, 잔잔한 책임감이 밀려왔다. 능력주의라는 거대한 신화는 우리가 서로에게 품어야 할 연대와 겸손을 앗아갔다. 우리 모두가 우연 속에서 태어났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승자와 패자라는 오만한 구분을 넘어설 수 있다.


다시 페달을 밟는다. 강을 건너며, 다짐한다. 내가 가진 것이 우연의 선물임을 잊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 선물을 나누는 방식으로 남은 시간을 살아가겠다고. 은퇴 후, 비로소 나는 능력주의라는 이름의 마지막 교복을 벗어던진다.


7만 년 전, 사피엔스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1만 3천 년 전, 지리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우연을 인정하며 나의 책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