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를 읽고
(독서감상문 공모 수상작)
아침이면 늘 하던 대로 커피를 내린다. 뜨거운 물이 원두를 통과해 검은 액체로 떨어지는 짧은 순간, 나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침묵 속에 머문다. 젊은 시절의 나는 이 침묵이 어색했다. 그 안에서 불쑥 떠오르던 '고독'이라는 단어는 결핍과 불안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어느 밤, 세상이 멈춘 듯한 정적 속에서 문득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떨까.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을 단순한 외로움의 신호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는 작지만 단호한 저항의 몸짓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부조리'란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세상은 침묵으로 답하는 모순적 상황을 뜻한다. 알베르 카뮈가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면서도 그 행위 자체로 운명에 저항하는 행복한 시지프를 그려냈듯, 이응준의 호루라기는 부조리 앞에서 무릎 꿇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다가왔다.
이응준의 산문은 고독을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냉철하게 응시하며, 불합리한 사회와 유한한 인간 존재, 때로 무력한 언어 앞에서 결코 침묵하지 않는다. 작가는 언어가 진실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무력감을 토로하면서도, 그 한계 속에서 끊임없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벼리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 글쓰기는 세상의 침묵에 맞서 소리를 내는 행위, 즉 호루라기를 부는 행위 그 자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고독은 삶의 진짜 무게가 드러나는 자리'라는 선언이 들려온다. 그 선언 앞에서 고독은 더 이상 외로움이 아니라, 진실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된다.
특히 16년을 함께한 반려견 토토와의 이별을 다룬 대목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부조리 앞에서 겪는 고독은, 작가에게 슬픔을 회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응시하고 견디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토토의 남은 온기를 느끼며 생명의 유한성과 상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을 통해 고독은 어쩔 수 없이 겪는 결핍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선택이 되며, 닫힌 공간이 아닌 가장 자유로운 사유의 영토로 변모한다.
작가의 시선은 개인적 비극을 넘어 사회의 풍경으로 확장된다. 그는 늦은 밤 지하철에서 저마다의 피로와 고독을 얼굴에 새긴 채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려낸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각자의 섬에 갇힌 현대인의 초상. 그러나 작가는 그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하는 군중 속에서 각자가 불고 있을지 모를 내면의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자 한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에서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고독한 사유를 통해 '나'의 존재를 증명한 데카르트를 넘어, 부조리에 저항하는 연대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응준이 밤마다 불어 올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바로 그 연대의 신호다. 그는 절망을 토로하는 대신, 세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행위로써 글을 쓴다. 그의 호루라기는 "나 또한 당신처럼 여기에 있다"고, "당신의 고독을 안다"고 외치는 무언의 연대다.
책을 덮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수많은 고독한 밤을 지나오며, 사회적 부조리에 절망하고 존재의 무의미함에 빠졌을 때, 나는 정말 호루라기를 불었는가.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기보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눈감아 버린 적은 없었던가. '작은 소리로 무엇이 바뀌겠는가'라는 냉소 뒤에 숨어 침묵을 택했던 순간들이 부끄럽게 떠올랐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자주 침묵했다.
그러나 이응준의 글은 호루라기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도구가 아님을 일깨운다. 그것은 내가 아직 여기에 살아있고, 생각하고 있으며, 끝내 굴복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신호다. 저항은 위대할 필요가 없다.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고, 혼자 산책하며 음악을 듣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소소한 행위 속에 이미 인간의 존엄은 빛나고 있다.
이제 고독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부조리를 직시하는 용기이자, 존엄을 지키기 위한 준비 상태다. 호루라기를 부는 일은 그 고독을 기꺼이 실천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고독한 밤을 맞이하지만, 그 순간 침묵 대신 자신의 소리를 내는 이만이 세상의 다른 소리와 연결될 수 있다.
카뮈가 무의미한 노동 속에서 시지프를 행복하다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절망적 운명을 긍정하고 껴안는 행위 자체가 인간 존엄의 증거이듯, 이응준의 호루라기는 어둠을 이겨내는 의지의 표현이다.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는 고독을 넘어선 반항의 기록이며, 존엄을 잃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선언이다. 언젠가 내 삶의 깊은 심연에서, 나 역시 주저하지 않고 나만의 호루라기를 불 수 있을까. 그날을 그리며, 나는 오늘도 고요한 아침의 침묵 속에서 나만의 작은 저항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