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나는 매일 30분을 걷는다. 명함을 버리고 홀로 글을 쓰는 나에게 청곡사로 가는 이 30분은 하루의 의식이 되었다. 집을 나서며 발목을 한 번 돌린다. 걷는 동안 휴대폰을 끈다. 세상과의 통신을 닫고 땅과의 대화를 여는 시간이다. 길 위에서 나는 자주 생각한다. 600년 전, 이 땅을 밟은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길 어딘가에는 '갈마정(渴馬井)'이라 불린 우물이 있었다. 우물은 사라졌고 길은 아스팔트로 덮였다. 그러나 이름은 남았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 자리. 갈마정이라는 이름이 흙 속에서 아직도 숨을 쉰다.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남해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던 젊은 장수가 진주를 지나던 길,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물을 청했다. 물을 긷던 처녀는 찬물 위에 버들잎을 한 장 띄워 내밀었다. '급히 마시면 탈이 날까 하여.' 장수는 그 지혜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 여인이 신덕왕후가 되었다.
설화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진실을 말할 뿐이다. 역사는 그녀의 생애를 짧게 적었으나, 땅은 긴 호흡으로 기억한다.
나는 역사에서 지워진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나 자신을 본다. 명함을 잃은 나와 왕비 자리를 잃은 그녀,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다. 때로 나는 생각한다. 역사란 누가 기록하느냐의 기술이고, 설화란 누가 기억하느냐의 목소리다. 기록은 권력을 따르지만, 기억은 발밑에서 피어오른다. 바람에 흙냄새가 일면, 나는 오래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물을 긷던 여인의 숨소리, 말이 코로 물을 불어내던 소리, 그것들이 바람에 섞여 들려온다. 역사가 지운 것은 이름이지만, 땅이 간직한 것은 숨소리다. 그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나의 움직임도 한 조각 설화가 된다.
진주 청곡사 자락에는 지금도 향 하나의 연기가 천천히 오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투명한 진열장 속, '청동 은입사 향완' 하나가 고요히 놓여 있다. 향완에는 두 단어가 새겨져 있다. '본향(本鄕)' 그리고 '원찰(願刹)'. 본향, 뿌리가 땅속 깊이 내린 곳. 원찰, 기도가 향연기로 오르는 곳. 향완은 이 두 단어로 한 여인의 진실을 전한다.
나는 한 번,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그 향완 앞에 선 적이 있다. 높지 않은 그릇 하나가 유리벽 속에 놓여 있다. 차가운 청동이지만, 나는 여기서 온기를 느낀다. 그것은 물질의 온도가 아니라 시간의 온도다. 600년 전 한 남자가 죽은 아내를 위해 이 그릇에 향을 올렸고, 그 마음이 청동에 스며들어 아직도 식지 않은 것이다. 향의 연기를 따라 시선이 오르면, 그 연기 끝에서 누군가의 이름이 피어오른다. 그것은 왕비의 이름이 아니라, 한 여인을 향한 한 남자의 그리움, 그리고 잊히지 않으려는 시간의 기도일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걸음마다 낙엽이 부서지고, 멀리 산등성이에서 까마귀가 한 번 울음을 던진다.
문득 발걸음이 멎는다. 혹시 이 땅 아래 우물의 돌조각 하나라도 남아 있을까. 내가 밟는 흙과 그 여인이 밟던 흙은 얼마나 다를까. 길가의 버드나무 껍질을 쓸어본다. 모양은 달라졌지만 결은 여전하다. 세월은 형태를 바꿀 뿐, 기억의 결을 지우지 못한다.
공식 역사는 신덕왕후를 지웠다. 능을 파헤쳤고, 왕비를 후궁으로 격하시켰으며, 아들과 딸의 운명까지 빼앗았다. 기록은 냉혹했고 문장은 짧았다. 그러나 땅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진주는 그녀를 우물가의 소녀로, 청곡사는 본향의 딸로, 향완은 사랑받은 아내로 기억한다.
역사가 남긴 것은 권력의 언어지만, 땅이 품은 것은 사람의 온기다. 그래서 나는 이 길을 걷는다. 아스팔트 밑으로 묻힌 시간의 심장을 밟으며. 자동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흩날리고, 그 순간 나는 오래전 말굽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내 안 깊은 곳에서도 어떤 울림이 일어난다. 젊은 날의 두려움과 중년의 공허, 은퇴 이후의 정적이 겹쳐지며 묘한 울음의 결을 만든다. 말굽이 흙을 차는 소리는 내 안에서 또 다른 의미로 번역된다. 그것은 지나간 세월의 심장소리이자, 내가 잃어버린 이름을 다시 부르는 소리다.
걷는다는 것은 잊힌 것들의 이름을 되살리는 일이다. 발바닥 아래의 흙이 나를 붙들고, 나는 그 위에서 글을 쓴다. 아침의 걷기와 저녁의 글쓰기가 하루의 앞뒤를 묶는 끈이 된다.
갈마정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이름은 여전히 땅속에 박혀 있다.
땅은 기억하는가, 내가 기억하고 싶은가. 기억은 남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석양이 청곡사 숲을 비춘다. 나무들 사이로 빛이 흩어지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난다. 가을 햇살은 부드럽지만, 그 속에 겨울의 기척이 섞여 있다. 바람이 불면 그림자가 흔들리고, 흔들리는 그림자 위로 흙냄새가 스민다. 우물은 메워졌지만 물의 냄새는 아직 이 길에 남아 있다.
오늘도 나는 걸으며 쓴다. 땅이 기억하듯, 나도 기록한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던 자리에서, 나는 이름 대신 문장으로 나를 남긴다. 내 걸음이 흙 위에 남긴 자국은 누군가에게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