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먹은 것은 마늘이 아니었다

by 건강한 오후

주말 아침, 나는 작은 텃밭에 쪼그려 앉아 달래를 캔다. 봄이면 여기저기서 고개를 내미는 가는 잎새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진다. 뿌리를 조심스럽게 털어내자, 흙 속에서 하얀 알뿌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흙 속의 뿌리를 더듬는 손끝의 감각은 마치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문장을 찾아 헤매는 밤의 감각과도 닮아 있다.


어머니도 봄이면 이렇게 달래를 캐오셨다. 텃밭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손에는 늘 흙이 묻어 있었고, 나는 그 손이 만든 된장국을 먹으며 자랐다. 된장국에 넣어 끓이면 알싸한 맛과 함께 봄 향기가 집 안 가득 퍼졌다. 달래의 매운맛은 마늘처럼 순간적으로 코를 찌르지 않는다. 은근하고 끈질기게 목구멍 뒤편에서부터 올라오는데, 그것은 길고 지루한 인내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손에 흙이 묻고 가는 잎새를 만지다가 문득 단군 신화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며 100일 동안 햇빛을 피하라 했고, 참을성 있는 곰만이 견뎌내 웅녀가 되었다는 그 이야기. 어디선가 곰이 먹은 것이 마늘이 아니라 달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흘려들었는데, 지금 손에 든 이 가는 잎새를 보니 그 말이 되살아났다. 가늘고 연한 잎, 작고 하얀 알뿌리를 가진 이 흔한 달래가, 쑥과 함께 산과 들에서 자라는 이 나물이 혹시 수천 년 전 곰이 먹었던 그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나를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늦은 밤, 나는 마늘의 유래와 단군 신화를 검색하며 인터넷의 바다를 헤맸다. 수많은 자료들을 뒤지다가 결정적인 문장을 발견했다. 마늘, 학명 Allium sativum,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이며 중국에는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 때 서역에서 들어온 것이 시초라는 기록이었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이 멈췄다. 기원전 2세기라면 단군 신화의 탄생 시점인 기원전 2333년과는 2,000년이 넘는 시간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한반도 전파 시기는 삼국시대 이후로 추정된다는 자료도 있었다. 나는 거대한 역사의 간극 앞에 서 있었다. 이것은 마치 신라 시대 유적에서 고추장이 발견된 것과 같은 시간의 오류였다.


마늘은 단군 신화보다 훨씬 후대에 이 땅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 앞에서, 모니터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가 수십 년간 믿어온 이야기는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는가.


밤새 화면을 응시하다 창밖을 보니 동이 트고 있었다. 며칠 뒤 나는 다시 『삼국유사』 원문 이미지를 찾아 헤맸고, 마침내 단군 신화가 기록된 부분에서 한문으로 '蒜(산)'이라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많은 번역본에는 "현대 한국어로 마늘"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었으나, 옛 중국 문헌에서 '蒜'은 반드시 이 한 가지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달래, 부추, 파 등 백합과 식물 중 매운맛을 지닌 것들을 통칭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는 우리가 아는 마늘을 '大蒜(대산)', 즉 큰 산이라 불렀고, 달래는 '小蒜(소산)', 즉 작은 산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했다.


고려시대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기록할 당시 마늘은 이미 이 땅에 자리 잡은 지 오래였고, 번역자에게 '蒜'이라는 글자는 자연스럽게 익숙하고 강력한 마늘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을 보면서 자동으로 색깔을 상상하는 것처럼, 후대의 사람들은 '蒜'을 자신들이 아는 마늘로 해석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재래시장에 들렀을 때 채소 가게 주인은 "달래는 봄에만 나오지, 지금은 철이 아니여"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달래는 철을 타는 나물이고 마늘은 저장성을 가진 채소다. 일 년 내내 구할 수 있는 익숙한 것이, 철 따라 나는 계절적인 것을 밀어내고 번역의 선택지가 되었을 가능성. 어쩌면 그것이 번역이 만든 또 하나의 신화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첫해 봄, 낯선 여백이 두려워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직장인으로 25년을 일했던 나는 숫자와 실적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살았다. 분기별 목표, 월별 달성률, 고객사 관리 일정표. 내 하루는 엑셀 파일처럼 빈틈없이 채워져 있었고, 그 일정표 안에서 나는 강력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조직이 번역한 '나'였다.


어느 겨울 밤, 김대리가 제출한 영업 기획안을 검토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A4 용지 귀퉁이의 커피 얼룩, 빨개진 눈, 밤새 고친 흔적들이 보였다. 그의 기획안은 조심스러웠다. 기존 거래처를 유지하면서 신규 시장을 천천히 개척하자는 내용이었다.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회의실에서 나는 그의 기획안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시장 분석이 너무 안일합니다. 경쟁사 대응 전략도 약하고요."


내 목소리는 마늘처럼 날카로웠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김대리가 고개를 숙이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는 그 후 더 강해졌을까, 아니면 결국 조직을 떠났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회의가 끝난 후 상무가 내게 말했다.


"자네는 너무 온정적이야. 더 강해져야 해."


나는 그날 이후 더 날카로워지는 법을 배웠다. 달래의 향은 회의실 어딘가에 남겨두고, 나는 마늘이 되었다. 분기 실적 1등, 우수 팀장 표창, 임원 후보. 조직이 원하는 강렬함을 익혔고, 그 과정에서 본래 내가 가진 온화함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러나 마늘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25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날카로움도 생존의 한 방식이었다.


지금 텃밭에 앉아 그때를 떠올리니, 번역이 만든 신화가 비단 고대 문헌에만 있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한때 나는 조직이 원하는 강력한 마늘이 되기 위해,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겼던 '나'라는 달래의 향기를 짓눌렀다. 지금 나는 묻고 있다. 원문의 나는 무엇이었을까. 누군가의 해석으로 덧칠되기 전, 야생의 달래처럼 제 철에만 고개를 내밀던 본래의 내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다시 텃밭에 앉아 달래를 캔다. 그 옆에서는 가을에 심은 마늘이 싹을 틔우고 있고, 쑥이 저절로 자라고 있다. 쑥과 마늘, 아니 쑥과 달래. 어쩌면 둘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 식물이 정확히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느냐일 테니까.


쑥을 삶으면 쓴 향이 피어오른다. 달래든 마늘이든 매운맛을 내는 식물은 참을성을 요구한다. 손에 들고 있던 달래의 알뿌리를 만져본다. 작고 단단하다. 겨울 땅을 뚫고 나온 것들은 모두 단단하다.


저녁 무렵, 텃밭의 고요 속에서 오래전 회의실의 형광등 불빛을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조직이 번역한 '나'였다면, 지금의 나는 흙이 해석한 '나'다. 어쩌면 나는 평생 번역되는 중일지 모른다. 다만 이제는, 누가 나를 번역하는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손끝에 묻은 달래 향. 그것이 내 안의 원문을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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