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명함 한 장을 주웠다. 바람에 날려온, 누군가의 명함. ○○건설 부장 김○○. 모서리가 닳고 한쪽 끝이 찢어진 명함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부장. 그 두 글자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아니, 얼마나 가벼웠을까. 나는 강물에 그 명함을 띄워 보냈다. 물은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흘러갔다. 5년 전 겨울, 나도 명함을 버렸다. 아니, 버렸다고 믿었다.
인사팀장이 건넨 서류 봉투. "명예퇴직 대상자." 내 이름이 있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현실 사이엔 생각보다 깊은 골이 있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25년이 A4 한 장이었다. 마지막 날 아침, 출근길 버스에서 옆자리 사람의 검은 가죽 명함첩을 보았다. 그는 명함을 한 장 꺼내 확인하고 다시 넣었다. 무심한 동작이었다. 나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 이 사람도 저 동작을 반복하겠지만,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명함첩을 꺼냈다. 한 권에 담긴 25년. 첫 장. "□□ 영업팀 대리 □□□." 그 작은 글씨가 자랑스러웠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서 "□□□ 대리입니다" 하고 중얼거렸던 서른의 청춘. 과장, 부장.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씨는 커졌고, 마지막 장의 "□□ 상무 □□□"는 회사 이름보다 컸다. 언제부터였을까. 명함을 건네는 것이 악수가 아니라 견제가 되고, 상대의 직급을 확인하는 것이 인사가 아니라 서열 확인이 된 것은. 명함첩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들고 있을 때는 가벼웠던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 무거웠다. 명함첩이 쓰레기통에 누웠다. 검은 가죽이 형광등을 반사했다. 나는 회사를 나왔다.
버스 안에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명함 지갑이 없었다.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25년 동안 그 주머니에 들어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름이었나, 직급이었나. 평일 오후 두 시, 혼자 사는 집의 거실. 벽시계가 똑딱거렸다. 그 소리를 처음 들었다. 아니, 처음 의식했다. 회사 다닐 때는 이 시간에 집에 없었으니까. 그날 밤, 맥주 캔을 따지도 못한 채 손이 떨렸다. 첫 출근 전날 밤, 그 떨림이 돌아왔다. 시작할 때 떨었고 끝날 때 떨렸다. 그 사이 25년 동안 나는 떨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다. 아침마다 여섯 시에 눈이 떠졌지만 일어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옛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요즘 뭐해? 한번 보자." "바빠서요." 거짓말이었다. 전화를 끊고 거울을 봤다.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 결혼했다면 누군가 뭐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사는 집에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일주일쯤 흘렀을까. 산책을 나갔다. 아파트 게시판. "초보자 환영" 산악회 모집. 전화를 걸었다. "오십 대 후반인데 괜찮을까요?" 상대방은 웃으며 부담 없이 나오라고 했다.
첫 모임 날, 등산로 입구. "무슨 일 하세요?" 주머니가 비어 있었다. "요즘은 손이 놀고 있습니다." 상대는 어색하게 웃었다. 정상까지 두 시간. 회사에서 회의 하나를 끝낼 시간. 산에서는 한 발 한 발. 나보다 나이 많은 이가 앞서 갔다. 산은 내 직급을 묻지 않았다. 정상에서 나눠 먹은 김밥은 짰다. 눈물이 날 정도로. 2년을 그렇게 매주 산에 올랐다. 그러나 산악회에도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었다. 등산 경력, 장비 가격, 회식 자리의 서열. 새로운 완장이었다.
그 무렵 산보다 자전거가 끌렸다. 처음엔 친구에게서 중고 자전거를 얻었다. 강변길을 따라 타봤다. 생각보다 좋았다. 1년 가까이 그 자전거로 강을 달렸다.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어 90만 원짜리를 샀다. 석 달을 타는 동안 내 몸이 두 바퀴의 리듬을 기억했다. 세 번째로 350만 원짜리 산악자전거를 샀을 때는 망설임이 없었다. 퇴직금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숫자를 보며 생각했다. 이 돈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을까. 재취업은 포기했다. 쉰여덟에 다시 시작할 자리는 없었다. 등산은 그만두었다. 페달을 밟는 동안에는 누구의 뒷자락도, 앞자리도 없었다. 바퀴가 돌아가는 소리와 강물 흐르는 소리. 그 위에서야 나는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 외롭지 않은 혼자.
버스에서 고등학생이 자리를 양보했다. "어르신, 앉으세요." "괜찮아." 창밖을 봤다. 쉰여덟. 어르신 소리를 듣는 나이였다.
어느 날, 한여름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들어갔다. 서가 사이를 걸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제목 때문에 집어 들었다. "강은 흐르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되돌아온다." 그 문장 앞에 오래 멈춰 섰다. 무엇이 강이고 무엇이 길인가. 나는 지금 강을 따라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길을 되돌아가고 있는가. 자전거 가방에 소설과 시집을 넣고 다니며 강변에서 책장을 넘겼다.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한 시간이 걸려도 좋았다.
고향 친구가 "독서 감상문 공모전" 이야기를 꺼냈다. 코웃음을 쳤지만, 집에 돌아와 3,000자짜리 글을 쓰는 데 이틀 밤을 꼬박 새웠다. 보고서는 30분이면 썼던 내가 한 문단을 위해 두 시간을 고뇌했다. 결과 발표 며칠 전, 문자 한 통이 왔다. "최우수상 ○○○ 수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시상식 참석 부탁드립니다." 시상식 날 상패를 받았다. 무거운 나무 상패. 25년 만에 처음 받은 상이었다. 그러나 기쁨보다 두려움이 컸다. 이제 계속 써야 한다는. 시작이 아니라 끝일 수도 있었다. 쉰여덟에.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축하해. 계속 써봐." "글쎄." "왜? 상도 받았잖아." "그래서 더 무서워."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이 아니다. 쉰여덟이다. 첫 명함을 받았을 때는 앞이 환했다. 그러나 첫 문장을 쓸 때는 떨렸다. 늦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밤, 새 파일을 열었다. 커서가 깜빡였다. 그날 밤 어둠 속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생각했다. 물은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브런치 작가 신청 페이지에 "전 □□ 상무"라는 수식어를 지우고, "명함을 버리고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적었다. 사흘 뒤 선정 메일이 왔다. 읽고 또 읽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맥주를 마셨다. 알릴 사람도 없었다. 조회수 열다섯 중 열 번이 내 클릭이었던 첫 글에 "공감된다"는 댓글 한 줄이 달렸다. 그것은 상사의 그 어떤 찬사보다 깊게 새겨졌다.
매일 밤 글을 썼다. 어떤 날은 한 줄을 쓰는 데 두 시간이 걸렸다. 구독자는 일주일에 한 명씩 늘었다. 지금은 스물셋. 어느 글은 "좋아요"가 일흔을 넘었다. 일흔 명이 내 문장에 손가락을 올렸다. 회사에서 내 보고서를 읽었던 사람보다 많은 숫자였다. 지금까지 70편을 썼다. 친구들을 만나면 농담처럼 "나 요즘 작가야"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웃는다. 나도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질문이 숨어 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작가'라고 불리고 싶은가. 명함이 그리운가, 아니면 글이 그리운가. 나는 아직도 세고 있다. 조회수를, 좋아요를, 구독자를.
명함도 분명 나였다. 서른에 받은 첫 명함은 시작이었다. 그러나 쉰여덟에 쓰는 첫 문장은 무엇인가. 시작인가, 끝의 시작인가. 오늘 아침 강에 띄워 보낸 누군가의 명함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바다에 닿았을지, 중간에 가라앉았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오늘 밤에도 내일 누군가 읽을지 모를 문장을 쓸 것이다. 늦었지만. 혼자지만. 주머니는 여전히 비어 있지만 손끝에는 오늘 밤 써 내려갈 첫 문장이 어렴풋이 만져진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자전거에 오를 것이고, 혼자 강을 따라갈 것이다. 그 모든 하루를 문장으로 옮길 것이다. 늦었지만. 쉰여덟의 첫 문장들로. 그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