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터에서 본 집

by 건강한 오후

사천 삼천포에서 고성으로 굽어지는 길목, 작은 어촌 덕명리는 가을볕에 졸고 있었다. 나는 봉화골 입구의 ‘건축왕 정세권 선생 생가 터’를 찾아 자전거를 멈췄다. 막상 마주한 풍경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적막했다. 주춧돌 하나 없는 빈터에는 이름 모를 잡풀만 무성했다. 백 년 전, 경성의 골목을 한옥으로 지켜낸 거인이 태어난 곳이라기에 나는 거창한 유적을 기대했으나, 발끝에 밟히는 것은 서걱거리는 마른 풀잎과 이 빠진 사발 조각뿐이었다. 바다에서 불어온 짠 바람이 빈터를 훑고 지나가며 억새의 몸을 흔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누군가의 오래된 마른기침 소리 같기도 했고, “집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낮은 신음 같기도 했다.


덕명리의 억새 소리가 귓가에 남은 채 돌아온 밤, 나는 습관적으로 부동산 앱을 실행했다. 화면 위로 매매가와 전세가라는 숫자들이 차가운 눈발처럼 쏟아졌다. 9년 전, 부산의 한 모델하우스에서 나는 거실의 채광 대신 영업사원의 엑셀 시뮬레이션 표를 보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 찍은 도장은 매끄러웠으나, 벽면을 가득 채운 가상 조감도를 보며 나는 문득 서늘한 불안을 느꼈다. 이곳에 내 신발을 편히 벗어 놓을 자리가 정말 있을까. 내가 산 것은 안식처가 아니라 숫자의 파도 위에 얹은 널빤지 한 장, 혹은 미래의 차익이라는 숫자의 신기루였다. 25년 직장 생활 동안 성공은 늘 제곱미터로 환산되었다. 넓은 평수가 나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으며 숫자의 성벽을 쌓는 동안, 정작 그 안에 살아야 할 나의 영혼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았다.


빈터를 걷는 나, 북촌 한옥의 좁은 방에 짐을 푸는 청년 정세권, 그리고 스마트폰 불빛 아래 일희일비하던 직장인. 그들 모두는 제 이름을 새길 단 한 칸의 바닥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이 거친 세상으로부터 나를 온전히 지켜줄 ‘자기 자리’를 찾는 일이었다.


백 년 전, 정세권이라는 남자가 꿈꿨던 집도 그러했다. 그는 대자본을 앞세운 일제의 ‘문화주택’이 북촌을 잠식해 올 때, ‘건양사’를 세워 조선의 서민들을 위한 작은 ‘도시형 한옥’을 빼곡히 지었다. 그에게 집 짓기는 영리 사업이 아니라 영토 전쟁이었다. 그는 돈이 되는 대저택 한 채 대신, 가난한 조선인 열 가구가 뿌리내릴 수 있는 열 채의 작은 집을 택했다. 그의 집은 벽돌의 집에 그치지 않았다. 1935년, 조선어학회가 사무실조차 구하지 못할 때, 그는 자신이 지은 건물을 통째로 내놓았다. 민족의 언어라는 ‘말의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의 가장 귀한 자산을 주춧돌로 바친 것이다.


그는 흙벽돌로 몸의 집을 짓고, 건물로 정신의 집을 지켰다. 수천 채의 집을 지어 민족의 삶을 구원한 이에게 정작 자신이 태어난 집은 없다. 그가 지은 집들은 지금도 북촌과 익선동에 당당히 서 있지만, 덕명리의 생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집을 짓는 사람의 집이 없다. 이 지독한 역설이 빈터에 발을 딛고 선 나를 아프게 했다. 어쩌면 그가 남긴 진짜 집은 건물이 아니라, 주춧돌조차 사라진 이 빈터의 고요 속에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은퇴 후의 길 위에서 문장으로 내 집을 짓기 시작한다. 이 문장 하나하나가 정세권이 쌓았던 흙벽돌처럼, 숫자로 환산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잠시 마음을 쉴 터전이 되기를 바란다. 25년간 회사에서 쓴 숫자의 보고서들은 바람에 흩어졌지만, 지금 내가 쓰는 이 불완전한 문장들은 누군가의 마음에 작고 따뜻한 곁방 하나를 만들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집은 숫자가 아니다. 집은 몸이 눕는 터이고, 말이 깃드는 그릇이며, 마음이 스러질 때 기댈 마지막 벽이다.


다시 덕명리의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빈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모든 것을 보았다. 백 년 전 한 사람이 흙벽돌에 새긴 마음이 오늘도 경성의 골목을 비추고 있음을. 정세권이 남긴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었고, 숫자가 아니라 비어 있음으로써 가득 차는 ‘터’였다.


해가 기우는 빈터를 떠나며 나는 깨닫는다. 저녁노을이 지붕 없는 그 터 위로 천천히 내려앉는다. 비로소 환한 빛의 서까래가 얹힌다. 빈터는 비어 있음으로써 세상의 모든 집을 품고 있었다. 집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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