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토지주택박물관 1층, 붉은 벽 전시실. 흑백사진 한 장이 걸려 있다. 가로 80센티미터, 세로 1미터. 초가집 지붕을 위에서 내려다본 사진이다.
지붕이 소용돌이친다. 서까래가 중심에서 밖으로 뻗는다. 방사형이다. 문 앞에 남자가 서 있다. 모자를 눌러쓴. 그를 중심으로 흰 선이 퍼진다. 집이라는 우주가 저 남자를 축으로 돌고 있다.
사진 속에서 남자는 영원히 서 있다. 소용돌이의 중심을. 나는 그 무게를 안다.
서까래의 선들을 하나하나 따라가 본다. 선들은 완벽한 직선이 아니다. 세월에 휘고, 무게에 눌려 조금씩 뒤틀렸다. 어떤 서까래는 중간이 갈라져 있고, 어떤 서까래는 끝이 부러져 있다.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삶의 하중을 받아낸 타원형의 궤적이다.
짚단 사이로 빛이 샌다. 틈이 있다. 비가 오면 물이 새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기운이 들이쳤다. 그러나 여름날, 처마 끝 그늘은 서늘했다.
눈을 감는다. 1970년대 여름이 떠오른다.
남자는 새벽부터 지붕에 올랐다. 태풍이 오기 전이었다. 짚을 새로 엮어야 했다. 그러나 손이 떨린다. 예전처럼 힘이 나지 않는다.
마루에서 아내가 물동이를 내왔다. "물 좀 마시고 하소."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해뜨기 전에 끝내야 되니께."
끝내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올라야 한다. 중심은 그런 것이다.
눈을 뜬다. 다시 박물관이다. 사진은 여전히 거기 걸려 있다.
전시실을 나온다. 주차장에 세워둔 자전거에 오른다. 남강을 따라 페달을 밟는다. 강물이 흐르고, 다리 난간이 지나가고, 제방 길 억새가 바람에 흔들린다.
점심시간, 국밥집에 들어간다. 뚝배기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뚝배기 중심은 끓어오른다. 김이 휘몰아친다.
25년간 나는 회의실 테이블 중심에 앉았다. 상석. ㄷ자 테이블의 정점. 모든 안건이 내 결재를 기다렸다. 고개를 끄덕이면 통과되고, 고개를 저으면 폐기되었다. 그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밤마다 서류를 검토하며 누군가의 월요일을 바꾸는 일이 두려웠다.
가장자리는 고요하다. 국물이 식어간다. 나는 가장자리에 숟가락을 댄다. 입에 넣는다. 따뜻하다. 중심의 뜨거움이 아니라, 가장자리의 온기다.
건너편 테이블 노인이 말한다. "요새 집 짓는 사람이 어딨노." 맞은편 노인이 답한다. "하모, 다들 아파트 사제."
노인이 덧붙인다. "아파트는 편하긴 한디, 지붕 올라갈 일이 없어서 섭섭하데이." 맞은편 노인이 웃는다. "늙은이가 지붕에 올라가면 내려올 기운이 어딨노."
그들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중심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웃음이었다.
오후에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붉은 벽 앞에 다시 선다. 사진 속 지붕은 여전히 소용돌이친다. 남자는 여전히 그 중심에 서 있다.
소용돌이를 오래 들여다본다. 중심은 무겁다. 모든 선이 거기서 시작되고, 모든 무게가 거기로 모인다. 서까래 하나가 부러지면 지붕이 무너지고, 짚 한 단이 빠지면 비가 샌다.
나는 중심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가장자리도 두렵다. 중심은 무겁지만 확실하다. 누군가 나를 부른다. 나는 필요하다. 가장자리는 가볍지만 불안하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나는 투명하다.
그래도 나는 간다.
서까래 끝. 처마 끝. 저 가장자리 어디쯤에서 가벼이 흔들리고 싶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비가 오면 젖고, 햇빛이 들면 마르는 짚 한 올처럼. 두려움을 안고.
사진 속 남자에게 묻고 싶다.
지붕에서 내려온 후,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다시 올라갔습니까. 아니면 그저 올려다보았습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도 아직 모른다. 중심에서 내려온 후,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전시실을 나선다. 자전거에 오른다. 페달을 밟는다.
내일도 이 앞을 지나칠 것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답을 찾으려, 아니 질문과 함께 살아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