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원표, 거리의 틈

by 건강한 오후

달려온 거리보다, 멈춰 선 자리가 더 먼 날이 있다.

은퇴 후 어느 오후, 나는 철도문화공원 앞에서 처음으로 발밑의 돌을 보았다.

그 돌 위에서, 삶의 속도 대신 좌표를 배웠다.


은퇴 후 어느 11월 오후. 갈 곳 없이 나선 길에 철도문화공원 앞 일호 광장에 닿았다. 바닥에 화강암 원표가 놓여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돌 위에 얹었다. 차가웠다.


화강암의 거친 질감이 손금을 긁었다. '서울 327.4km'라는 글자를 손끝으로 더듬었다. 새겨진 숫자의 골이 깊었다. 그 틈으로 낙엽 먼지가 끼어 있었다. 평양 568.2km. 신의주 734.5km. 북으로 갈수록 숫자는 커지고, 내 손끝은 차가워졌다.


열 해 남짓 전, 나는 서울을 향해 달렸다. 새벽 5시에 출발하면 오전 9시 회의에 맞출 수 있었다. 경부고속도로 휴게소의 아침 햇살, 천안 어딘가의 안개, 용인을 지날 때 보이는 산 능선. 나는 그것들을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것은 앞차의 번호판과 네비게이션의 잔여 거리뿐이었다.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성취였다. 풍경은 장애물이었다.


북위 35도 10'41", 경도 128도 05'21". 이 돌이 차지하는 정확한 좌표다. 도시의 이름과 거리는 인간이 만든 기준이지만, 경위도는 행성이 부여한 본질이다.


결재판의 마지막 칸에 찍히던 붉은 도장이 사라진 후 나는 좌표를 잃었다. 서울까지 327km는 이제 무의미하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출근길 30km가 지금은 천 리보다 멀다. 거리는 숫자가 아니라 마음이다.


원표 주변으로 방위석이 놓여 있다. 부산 111.2km, 광주 159.7km. 모든 방향이 열려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어디로도 서두르지 않는다.


무릎을 꿇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해가 기울었다. 돌의 차가움이 손바닥을 타고 팔뚝까지 올라왔다. 광장은 고요했다. 바람만이 낙엽을 굴렸고,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내 호흡보다 컸다.


기준이 된 사람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거리는 여기서 시작된다. 나는 이제 어디로도 가지 않기로 했다. 이곳이 나의 좌표다. 행성이 부여한 그 정직한 숫자들 위에. 진주.


매일 오후 3시, 나는 책상 앞에 앉는다. 창밖 햇살이 책상 모서리를 스친다. 5분쯤, 그리고 사라진다. 그 5분 동안 나는 키보드를 두드리지 않는다. 그냥 빛이 움직이는 것을 본다.


이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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