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잠이 오지 않는다. 궤도를 벗어난 삶에 불면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로 살 때는 베개에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졌는데, 지금은 천장을 보며 시간을 센다. 할 일이 없다는 것, 내일이 오늘과 같다는 것. 그 정지된 무게가 어둠 속에서 가슴을 짓누른다.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선다. 차가 뜸한 새벽 도로 위로 가로등만 일렬로 서 있다. 나는 그중 하나 아래 멈춰 선다.
주황빛이 아래로 쏟아져 내려와 아스팔트 위에 완벽한 원을 그린다. 빛이 닿는 경계는 선명하다. 원 안은 안전이고, 원 밖은 어둠이다. 나는 그 빛의 원 안에 서서 손바닥을 펴본다. 검지와 중지 사이, 작고 딱딱한 혹 하나가 만져진다. 이십오 년간 펜을 꽉 쥐고 수많은 결정을 내리며 새겨진 굳은살이다. 이제 그 자리엔 키보드를 두드리는 새로운 마찰이 더해지고 있다.
가로등은 밤새 켜져 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도, 아무도 이 길을 지나지 않는 시간에도. 가로등은 묻지 않는다. '누가 나를 보는가'를 묻지 않는다. 그저 밤이 오면 켜지고, 새벽이 오면 꺼질 뿐이다.
27년 전이 떠오른다. 마감을 앞두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 새벽 네 시에 문을 나서면 가로등은 이렇게 켜져 있었다. 나는 가로등 아래서 연기를 내뿜으며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스스로를 태우는가.' 답은 명확했다. 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기 위해,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해. 그러나 가로등은 달랐다. 가로등은 박수를 받기 위해 빛을 내지 않는다. 나는 이십오 년 동안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 앞에 서 있었다.
그곳을 떠나던 날을 기억한다. 창밖으로 비스듬히 들어오던 오후의 햇살 속에서 먼지들이 느릿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책상 위로 밀려온 서류 한 장. '명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중한 거절의 문장. 이십오 년의 노동이 얇은 종이 한 장으로 정리되던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위해 빛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가로등 기둥을 만져본다. 차갑다. 금속 표면에 녹이 슬어 거칠다. 수십 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을 이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다. 전기가 소모되고 열이 발생해도 가로등은 그 소멸을 기꺼이 감수한다. 자신을 태워 빛을 만든다. 그것이 가로등의 노동이다.
가로등은 자기 발밑을 비춘다. 빛의 원은 가로등 기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가로등은 멀리 있는 무언가를 탐하지 않는다. 제 곁을 지나는 것들을 묵묵히 비출 뿐이다.
그곳을 떠난 후 오 년, 나는 여전히 타인의 숫자를 의식하며 산다. 모니터 너머 누군가의 반응을 살핀다. 나는 아직도 인정이라는 갈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로등 빛 아래 서서 나는 깨닫는다. 가로등이 위대한 이유는 누군가 보아주기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밤이 오면 켜지고, 새벽이 오면 꺼질 뿐이라는 것을.
동이 트기 시작한다. 가로등 빛이 희미해진다. 태양의 빛이 오면 가로등은 조용히 꺼진다. 침묵의 퇴근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켠다. 가로등의 주황빛이 따뜻한 섬이었다면, 모니터의 하얀 빛은 차갑고 광활한 우주다. 나는 이제 숫자를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쓴다. 내 안의 남은 온기를 소진하여 이 문장을 만든다.
가로등처럼, 나도 묵묵히 켜지기로 한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다. 밤이 오면 켜지고, 새벽이 오면 쉰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창밖으로 아침 햇살이 들어온다. 꺼진 가로등이 보인다. 오늘 밤, 저 가로등은 다시 켜질 것이다. 나도 다시 이 자리에 앉을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