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이 있다. 수직의 높이다. 그 옆으로 수평의 철제 난간이 흐른다. 오르는 발걸음은 의지이고, 내려가는 발걸음은 중력의 순응이다. 몸의 중심을 잡는 일은 고단한 노동이다.
손잡이를 잡는다. 차가운 금속이다. 겨울의 쇠는 가차 없다. 손바닥이 닿는 면적은 좁지만, 그 좁은 선(線)이 내 생의 하중을 받는다. 손잡이는 제 스스로 짊어지는 무게가 없다. 오직 잡는 자의 무게만을 침묵으로 견딜 뿐이다.
오를 때는 손잡이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손잡이는 그저 장식이었다. 정상을 향한 속도가 곧 존재 증명이었으므로, 나는 난간에 기댈 틈이 없었다. 손잡이는 붙잡는 것이 아니라 스치는 것이었다. 발끝에만 신경 쓰던 시절, 손잡이의 표면이 어떤 질감인지 알지 못했다.
그때 나는 계단을 숫자로만 세었다. 몇 층, 몇 단. 목표까지의 거리. 손잡이는 그저 벽에 붙은 금속 막대기였다. 나는 그것을 의지의 도구로 여기지 않았다. 스스로 오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려가는 일이 더 잦다. 내리막은 무섭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몸은 궤도를 이탈한다. 나는 손잡이를 단단히 쥔다. 차가운 금속의 질감이 손바닥의 혈관을 타고 들어온다. 쇠의 견고함이 나의 허약한 중심을 메운다.
손잡이의 표면은 닳아 있다. 수천 명의 익명이 이곳을 지나갔다. 손때가 묻어 반질거린다. 녹이 슬고 또 닳았다. 이 매끄러움은 수십 년 세월이 남긴 마모의 기록이다. 철은 단단하다고 했지만, 결국 무수한 손길 앞에서 철도 깎인다.
손잡이는 말이 없다. 언제나 그 자리에 평행으로 서 있을 뿐이다. 몸이 기울어진 자들이 이곳에 순간의 목숨을 의탁했을 때, 난간은 흔들림 없이 그 충격을 받아냈을 것이다. 그것은 지지와 의지가 맺는 침묵의 계약이다.
나는 손잡이에 몸을 기댄다. 잠시 내 무게를 내려놓는다. 철의 냉기가 손바닥을 적신다. 그 냉기 속에서 나는 비로소 안다. 견고함이란 타인의 기울어짐을 받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을.
은퇴 후, 걸음이 느려진 뒤에야 이 철의 문장을 읽는다. 내려간다는 것은 권위를 잃는 일이 아니라, 비로소 손잡이의 온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기력이 약해질수록 사물은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손잡이는 내가 올라갈 때도 거기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손을 뗀다. 손바닥에 차가운 금속의 감각이 낙인처럼 남는다. 그 감각이 사라지기 전에 나는 다시 걷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손잡이 없이도 걸을 수 있는 평지가 나타날 때까지.
계단 손잡이는 묻는다.
너는 누군가의 기울어짐을 침묵으로 받아낸 적이 있는가.
너는 견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