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골짜기

by 건강한 오후

버스가 덕산을 지나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섰을 때, 대원사 방향을 택한 승객은 나를 포함해 다섯 명뿐이었다. 텅 빈 좌석 왼편으로 천왕봉에서 내려온 황금능선이 시야를 가득 채웠으나 나는 눈을 감았다. 화려한 것은 이미 충분히 보았다. 이제 나는 그 화려함 뒤에 숨은 적막을 보고 싶었다. 버스는 내원사 입구에 섰고 내리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지리산은 넉넉하나 나는 화려한 볼거리 대신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이 멈춘 자리, 1963년 11월 12일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체포된 내원골 깊은 산속을 택했다. 은퇴 후 수식어를 버리고 홀로 문장을 쓰고 지우는 것, 이것이 내 고독이다. 그 무게를 가늠하고 싶어 입구에서 계곡을 오르는 가파른 길에 섰다.


낙엽 쌓인 돌계단 사이로 차가운 물소리만 들린다. 11월의 칼날 같은 공기는 숨을 쉴 때마다 폐 속까지 찬 기운을 박아 넣는다. 계곡물이 바위를 때려 튄 물방울이 등산화에 떨어져 가죽을 어둡게 적신다. 나는 예순 가까운 몸으로 첫 계단을 디뎠다. 허벅지가 땅긴다. 예전 회사 다닐 때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든 적이 없었다. 나를 밀어 올리는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 시선이 곧 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두 다리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야 한다. 굳은 근육이 풀어지는 고통 속에 땀이 흐른다.


한참을 올라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니 입구는 아득하고 앞을 보아도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선 사람은 늘 그렇다. 떠나온 곳도 향할 곳도 모두 멀다. 은퇴 후 5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 계곡처럼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삼백 계단쯤 올랐을 때, 옆 바위틈에서 물이 스며 나왔다. 손바닥을 펴 받았다. 혀끝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회사 다닐 때 마시던, 누군가 준비해 둔 정수기 물이 아니다. 땅에서 솟아 바위를 타고 흐른 날것의 물이다. 육십 년 전, 그녀도 이 물을 마셨을까. 구들장 밑 어둠에서 목이 미어질 때마다 이 물의 빛을 떠올렸을까. 물을 삼켰다. 차가움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명치끝에서 멈췄다.


계곡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졌다. 양옆의 바위가 어깨를 짓누를 듯 다가오고 하늘은 겨우 한 줄기 빛만 허락했다. 이곳엔 아무런 표식도 없다. 역사는 이 좁고 가파른 골짜기에 아무런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안내판 하나 없는 그 무심한 적막이 오히려 이곳이 생존의 자리였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구들장 밑 십삼 년. 좁은 바위 틈새를 볼 때마다 그 숫자가 발끝에 차인다. 숨소리를 삼키며 그녀는 자기 이름을 잊어야 했다. 발소리로 낮과 밤을 구분했을 그녀. 기침 한 번이 죽음이었을 그녀. 나는 하늘을 본다. 그녀는 보지 못했다.


회사가 생각난다. 이십오 년. 나는 사무실이라는 이름의 밝은 동굴에 있었다. 형광등은 환했으나 나는 볼 수 없었다. 내가 차지한 자리의 무게와 좁은 회의실 테이블 위 내 영역의 크기만 중요했다. 이십오 년 동안 나는 그 밝은 어둠 속에서 살았다. 내가 아침 일곱 시에 커피를 내릴 때 그녀는 새벽 다섯 시에 숨을 죽였다. 내가 문장을 지울 때 그녀는 기침 소리를 삼켰다. 내가 온라인에 글을 올릴 때 그녀는 십삼 년간 자기 이름을 발음하지 못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서류에 서명하며 그 무게를 나눌 사람 없이 고립되었던 순간, 나는 살아남기 위해 침묵했고 그녀는 살기 위해 침묵했다. 무게는 다르나 침묵의 고독은 닮았다.


오백 계단쯤 올라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나뭇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정순덕은 십삼 년간 보지 못한 풍경이다. 그녀에게 가장 불가능했던 사치는 스스로의 이름을 크게 발음해 보는 자유였을 것이다. 그 침묵은 1963년 11월 12일 새벽 총성과 함께 깨졌다. 동료가 사살되고 다리에 총상을 입은 그녀는 산이 버린 마지막 잎새처럼 차가운 계곡으로 끌려 나왔다. 병원에서 오른쪽 대퇴부를 절단했다. 십삼 년간 그녀를 도망치게 했던 다리가 잘려 나갔다. 다리가 잘린 순간 그녀는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걸어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에 영원히 산에 갇혔다. 이후 이십이 년의 수감 생활과 전향 거부, 북한 송환 거부. 고향도 가족도 없이 2004년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떠도는 존재였다.


계곡 가 바위에 앉아 물소리를 듣는다. 나의 고독은 선택이다. 그녀의 고독은 생존이었다. 나는 글을 쓰며 무언가를 찾지만 그녀는 목숨을 걸고 도망쳤다. 지금 나는 한 문장을 위해 백 개의 문장을 지우는 인내를 배운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아무도 내 글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쓴다. 이것이 내가 선택한 구들장이며 내가 견뎌야 할 전부다. 다시 일어나 정상을 향해 걷는다. 정순덕이 견뎌낸 것은 결국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놓지 않았던 생의 끈이었다. 나 역시 가늘지만 그 끈을 잡고 있다.


하산길은 빨랐다. 중력이 나를 끌어당긴다. 올라올 때는 보이지 않던 이끼 낀 돌탑 앞에 멈춰 선다. 정순덕을 위해, 아니 내가 잊지 않기 위해 돌 하나를 줍는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 돌탑에 돌을 올린다. 내가 딛고 내려가는 이 길은 정순덕에게는 영원히 끊어진 길이었다. 그 끊어진 길 때문에 나의 문장이 비로소 시작될 수 있었다.


입구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리며 매점에서 물을 산다. 찌그러진 페트병. 천오백 원. 플라스틱 너머로 계곡물이 흔들린다. 버스를 기다리며 벤치에 앉는다. 주머니에서 손을 꺼낸다. 여전히 차갑다. 아까 바위틈 물과 이 페트병 물은 같은 온도다. 그러나 그녀가 목숨을 걸고 마셨을 물을 나는 천오백 원을 주고 산다.


버스가 온다. 뒷좌석에 앉아 창밖을 본다. 계곡이 멀어진다. 귓가에는 아직 구들장 밑 숨소리가 남아 있다. 집에 돌아가면 나는 자판 앞에 앉을 것이다. 그녀가 발음하지 못한 이름을 나는 한 자 한 자 쓸 것이다. 그것이 이 차가움을 배신하지 않는 길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