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의 『도덕경』, 나를 고유명사로

by 건강한 오후

길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팬데믹이 세계를 뒤덮던 시절, SF 소설가 켄 리우는 더 이상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쓸 수 없었다. 사람들은 위기 앞에서 뭉치기보다 서로를 향해 증오를 뱉었고, 세계는 그가 상상했던 어떤 디스토피아보다 더 낯설게 돌아갔다. 그는 손에 잡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하다가 도덕경을 펼쳤다.


나는 그 대목을 읽으며 잠시 책을 내려놓았다.


길을 잃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길을 잃었다는 감각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 해야 할 일이 사라지거나, 그 일의 의미를 잃거나. 켄 리우에게는 팬데믹이 그 계기였고, 내게는 은퇴가 그랬다.



날카롭되 베지 않는 말들


켄 리우가 도덕경에 처음 마음을 연 것은 내용보다 감촉 때문이었다고 한다. 노자의 말은 날카롭되 베지 않았고, 정의롭되 판단하지 않았으며, 희망을 품되 달콤하지 않았다.


나도 그 감촉을 알 것 같았다.


도덕경을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한자가 많고 주석이 장황한 번역본을 몇 장 넘기다 덮어버렸다. 켄 리우의 번역은 달랐다. 그는 도덕경을 소박한 나무처럼 번역했다. 꾸밈없는 언어로, 노자가 원래 그랬을 것처럼. 어려운 한문도, 방어적인 주석도 없다. 장자의 우화를 곁들여 숨을 틔워주면서, 독자가 노자의 말을 자기 속도로 음미하도록 여백을 남겨둔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이 번역은 정답이 아니라 "길 위에 남긴 하나의 발자취"일 뿐이라고. 독자는 그 발자취를 따르다 결국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세 개의 문장


켄 리우의 도덕경에서 오래 붙들린 문장이 셋 있다.


첫 번째.

"그릇의 쓸모는 진흙이 아니라 빈 공간에 있고, 방의 쓸모는 벽이 아니라 빈 방에 있다."


무언가를 계속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꽉 차게. 그런데 그릇이 이미 가득 차 있다면, 새로운 것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의 조건이라는 것. 이것이 켄 리우가 말하는 무위(無爲)의 출발점이다.


두 번째.

"적게 가짐은 곧 다 가짐이고, 많이 가짐은 혼란으로 끝난다."


은퇴 후 처음 맞는 아침들이 떠올랐다. 일정이 없었다. 연락도 없었다. 그것이 자유인지 공허인지 한동안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 문장을 읽고 나서야 그 아침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내 것이 된 시간이었다.


세 번째.

"천 리 길도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한다."


거창한 출발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지금 여기가 이미 길의 시작이라는 것. 이 문장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



오래된 강의를 다시 꺼냈다


켄 리우의 책을 덮고 나서, 서랍 속 기억 하나를 꺼냈다. 몇 해 전 들었던 최진석 교수의 도덕경 강의였다.


당시에는 절반쯤만 들었다. 강의가 어렵다기보다, 내가 그 말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켄 리우의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들으니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다.


최진석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산 것은 부드럽고, 죽은 것은 뻣뻣하다. 우리를 뻣뻣하게 만드는 것은 고정된 이념과 타인의 기준이다."


그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서서히 일반명사로 전락한다고 했다. 처음엔 모두 고유명사로 태어난다. 그런데 직함이 붙고, 역할이 생기고, 소속이 생기면서 우리는 부장님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씨 대신 직책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집단의 부품이 되는 것이다.


켄 리우의 '비움'과 최진석의 '덜어냄'. 손동작이 같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는 것. 채우려는 욕망을, 증명하려는 충동을, 타인의 기준을.


다만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은 조금 다르다. 켄 리우는 내려놓은 자리에서 평화를 본다. 최진석은 그 자리에서 자기를 본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순서의 문제인 것 같다. 먼저 평화가 와야, 진짜 자기가 보이는 법이니까.



일반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나는 오랫동안 일반명사였다.


직함이 있었고, 소속이 있었고, 역할이 있었다. 그것들이 나를 설명했고, 나는 그 설명 안에서 살았다.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언제나 분명했으니까.


은퇴는 그 설명이 사라지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상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켄 리우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비움이었다. 그릇이 텅 빈 것이다. 그리고 최진석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귀환이었다. 일반명사에서 고유명사로 돌아오는 길이 열린 것이다.


나는 지금 글을 쓴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기 때문에.


이것이 무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글을 쓸 때만큼은, 나는 분명히 고유명사다.


길은 걷는 사람이 만들고,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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