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이라는 이름의 저항

by 건강한 오후

아침 7시, 남강 자전거길에 안개가 걷힌다. 페달을 밟는다. 허벅지가 팽팽해진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긁는다. 25년 동안 이 시간이면 나는 서류 가방을 들고 회사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늘 긴장해 있었다. 지금은 강물 위 가로등 불빛을 본다. 그 빛이 물결에 부서진다. 자전거 바퀴가 아스팔트를 핥는 소리만 들린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읽은 것은 은퇴 후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책장을 넘기다 한 문장에서 멈췄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기대했는지 물었다." 그 문장이 가슴을 쳤다.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의 평범한 영문학 교수였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우연히 문학을 만났다. 평생을 강단에서 보냈으나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않았다. 승진도 더디었고, 동료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없었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실패한 삶이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이것이 정말 실패인가.


소설의 중심에는 한 장면이 있다. 실세 교수 로맥스의 비호를 받는 학생을 스토너가 낙제시키는 순간이다. 그 학생은 학문적 자질이 없었다. 논문은 표절투성이었고, 구술시험에서는 기본 개념조차 설명하지 못했다. 스토너는 그를 통과시킬 수 없었다. 로맥스가 찾아왔다. 문을 닫았다. 협박했다. 스토너는 고개를 저었다. 로맥스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낙제 통보 후 로맥스는 권력을 동원했다. 스토너의 강의 시간표를 최악으로 배정했다. 새벽과 저녁 끝 시간. 연구실을 외딴 건물 지하로 옮겼다. 학과 회의에서 그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젊은 교수들은 눈치를 보며 스토너를 외면했다. 스토너는 항변하지 않았다. 다만 매일 아침 낡은 강의실 문을 열고 학생들 앞에 섰다.


문학 속의 부조리와 현실의 부조리는 닮아 있었다. 이 장면을 읽을 때, 2012년 봄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물건의 가치를 숫자로 매기고, 사람의 신용을 서류로 검증하며 십오 년을 보냈다. 현장의 흙먼지와 사무실의 서류 뭉치 사이를 오가며 견고한 신뢰의 성벽을 쌓았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다. 오랜 시간 공들여 선별한 협력업체를 교체하고, 검증되지 않은 신생 업체와 계약하라는 것이었다.


나보다 높은 의자에 앉은 이가 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구두 소리는 규칙적이고 위압적이었다. "적당한 선에서 굽히는 것도 지혜지. 자네 앞에 놓인 계단을 생각하게." 나는 거절했다. "원칙이 무너지면 시스템이 무너집니다." 그의 얼굴이 굳었다. "두고 보자고.“


그해 연말 인사에서 나는 한직으로 밀려났다. 사무실 구석, 창문도 없는 자리였다. 책상 위에는 먼지만 쌓였다. 동료들이 수군거렸다. 커피 머신 앞에서 누군가 웃었다. 나는 아침마다 출근 카드를 찍었다. 할 일은 없었다.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았다. 이메일도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구내식당 구석 자리에 앉았다. 혼자.


그 자리 식탁 모서리에는 녹슨 나사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손끝으로 만져보면 버석거리는 금속의 질감이 전해졌다. 그 차갑고 거친 촉감이 꼭 내 처지 같아 매일 그 나사를 만지작거렸다. 창밖으로 봄비가 내렸고, 벚꽃이 지고 여름이 왔다. 그 시간이 3년 지속되었다.


스토너가 강의실을 지켰듯, 나도 내 자리를 지켜야 했다. 스토너의 성실함은 부동(不動)이었다. 폭풍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로맥스의 보복 속에서도 스토너는 매일 강의실에 갔다. 학생은 세 명뿐이었다. 그는 세 명을 위해 강의안을 준비했다. 나의 3년도 그랬다. 할 일이 없어도 출근했다.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지만, 나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성실은 흔히 부지런함으로 이해된다. 열심히 일하고, 많은 성과를 내고, 빠르게 승진하는 것. 그러나 스토너를 읽으며 깨달았다. 진짜 성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 세상이 나를 밀어낼 때,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박수도 없고, 인정도 없고, 보상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이 저항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자신의 유일한 저서를 손에 든다. 책의 표지가 낡았다. 종이가 거칠었다. 손가락 끝으로 그 질감을 느낀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무엇을 기대했는가?" 화려한 명예도, 부도, 완벽한 사랑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책의 거친 질감을 느끼며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았음을.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방식으로 살았음을.


나는 책을 덮고 창밖을 보았다. 남강이 흐르고 있었다.


은퇴 후 나는 글을 쓴다. 조회수를 확인하지 않는다. 댓글을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쓴다. 스토너는 세상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바꾸지도 못했다.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이었다.


다시 남강 자전거길이다. 해가 완전히 떴다. 아침 안개가 걷혔다. 강물 위로 햇살이 부서진다. 나는 페달을 밟는다. 허벅지가 무겁다. 숨이 가빠진다. 그러나 바퀴는 돈다. 어제도 돌았고, 오늘도 돈다.


식탁 모서리의 녹슨 나사가 떠오른다. 3년 동안 나를 지켜보던 그 나사처럼, 나도 내 자리를 지켰다. 이제 강물이 그 시간을 씻어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