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를 읽고
알고리즘에는 통각(痛覺)이 없다. 땀 흘리는 육체와 죽음을 예감하는 떨림이 거세된 기계의 문장들 사이에서 인간의 자존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0.1초 만에 완벽한 정답을 내놓는 AI에게 우리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불편하고도 인간적인 오답은 무엇인가. 장강명의 『먼저 온 미래』는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기계가 문장을 만들고 이야기의 구조를 계산하도록 진화한 시대에, 작가는 묻는다. 예술의 이름으로 쓰이는 이 문장들은 아직 인간의 것인가. 이 물음이 터지는 순간, 창의성의 성역은 무너지고 인간은 다시 몸의 깊은 곳에서 질문을 길어 올린다.
장강명은 이 책의 초반부에서 우리가 그토록 신성시해온 '창의성'의 민낯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챗GPT가 수만 편의 시를 학습해 내놓는 결과물 앞에서, 인간의 영감은 더 이상 무(無)에서 유(有)를 길어 올리던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무수한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내는 안목과 알고리즘의 연산 문제로 귀결된다. 이 절망적인 묘사는 단순히 차가운 이론이 아니다. 평생 문장을 업(業)으로 삼아온 작가가 자신의 영토를 침범당하며 써 내려간 실존적 체험의 기록이다.
그가 지목한 인간의 최후 영토는 바로 '신체성'이다. 기계는 이별의 슬픔을 유려한 문장으로 제조할 수는 있지만, 이별 때문에 가슴이 미어지는 물리적 통증은 느끼지 못한다. 피로에 젖은 어깨, 진창을 밟는 듯한 숨, 이 생의 체온과 잔여 감각이야말로 기계가 결코 침범할 수 없는 인간만의 성소다. "기계에는 통각이 없다"는 작가의 선언은, 기술에 추월당한 시대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힘은 매끄러운 계산이 아니라 고통을 느끼는 육신을 담보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자기 서사를 쓰는 존재'임을 역설한다.
그러나 기술이 가져온 위협은 개인의 실존에만 머물지 않는다. 작가는 기술이 약속한 ‘평평한 세계’라는 유토피아적 수사 뒤에 은닉된 잔인한 불평등의 골조를 직시한다. 도구와 정보가 평등해졌다는 선언은 얼마나 공허한가. 현실에서 기술을 부리는 자본과 데이터를 장악한 권력에 의해 격차는 도리어 정교하게 벌어지고 있다. 알고리즘은 인간을 연결하기보다 각자의 취향과 편향 속에 가두는 ‘유리 감옥’을 만든다. 보편적 언어가 소멸한 공론장에서 사실과 진실은 증발하고, 그 자리에는 확증편향의 비린내만 울린다. 결국 이 불평등을 만든 것은 알고리즘 자체가 아니라, 그 판단을 위탁하며 ‘고뇌할 권리’를 포기한 우리 자신이다. 기술은 인간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 계산식의 어딘가에는 우리의 무관심이 이미 각인돼 있다.
2026년 현재, 우리는 매일 아침 AI가 정제한 정보를 수혈받고 알고리즘이 설계한 욕망의 경로를 따라 걷는다. 정답이 0.1초 만에 쏟아지는 이 시대에 인간의 유용성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강명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인 희망을 건져 올린다. 기계가 정답을 내놓을수록, 인간의 존엄은 답이 아닌 '질문'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는 계산할 뿐 고뇌하지 않는다. 닥쳐온 미래의 고삐를 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계의 정답을 의심하고, 기꺼이 불편한 오답의 험난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기술 낙관론자들은 반박할 것이다. AI의 감각 시뮬레이션은 이미 인간의 통각을 모방하고, 스마트폰 하나로 전 세계 지식이 평등해졌으며, 효율적 정답이야말로 경쟁력이라고. 그러나 장강명은 이런 낙관이 '고통의 실존적 무게'와 '구조적 불평등의 실체'를 외면한 허상임을 날카롭게 직시한다. 정답을 내놓는 기계와 질문을 던지는 인간. 이 근본적 차이를 지우려는 시도는 결국 인간을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킬 뿐이다. 질문은 여전히 인간만의 무기다. 우리가 자신의 생을 스스로 서술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서사적 주체'로 남을 때, 인간은 비로소 기술의 주인이 된다.
우리는 이제 매끄러운 정답의 시대를 산다. 오류 없는 계산, 피로 없는 생산, 감정 없는 위로 속에서 인간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진다. 그러나 장강명은 묻는다. 정말로 인간이 사라진 세상이 편안한가. 고통이 증발한 자리에 남은 잉여의 평화는 생의 완성이 아니라 감각의 사인(死因)에 가깝다. 미래는 기술의 매끄러운 손끝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체온을 나누는 순간, 그 고통스러운 연대 속에서 조금씩 써 내려가는 인간의 서사다. 그 서사의 첫 문장은 여전히 우리 각자의 비린내 나는 숨소리 속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