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철문에 플러그가 걸려 있다. 폐가전 플러그다. 검은 플라스틱 몸체가 문고리를 감싸고, 두 갈래 금속 핀이 허공을 향한다. 본래의 기능은 연결이었다. 콘센트에 꽂히고, 전기를 흘려보내고, 기계를 작동시키는 것. 그러나 지금 이 플러그는 연결하지 않는다. 대신 고정한다.
나는 그 앞에 섰다. 오후의 햇살이 녹슨 철문을 비춘다.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마다 녹물이 흘러내렸다. 철의 부식은 시간의 기록이다. 그 부식된 철 위에서, 플러그만이 원형을 유지한다.
플러그의 플라스틱 표면을 자세히 본다. 미세한 스크래치가 있다. 먼지가 홈에 끼어 있다. 한때 이 플러그는 누군가의 손에 쥐어졌을 것이다. 콘센트에 꽂히고 뽑히기를 수없이 반복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전기가 흘렀다. 선풍기를 돌리거나, 텔레비전을 켜거나, 냉장고를 작동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연결이 끊겼다.
가전제품이 고장 났다. 수리할 가치도 없었다. 제품은 버려졌고, 플러그만 남았다. 전기를 연결할 곳도 없고, 흘려보낼 전류도 없다. 본래의 정체성이 사라진 순간, 플러그는 쓰레기가 되었다. 쓰레기통에 던져졌거나, 길가에 버려졌거나, 어딘가에 굴러다녔을 것이다.
은퇴도 그렇다. 직장이라는 콘센트가 사라진다. 직함이라는 전류가 끊긴다. 25년간 나를 정의했던 쓸모가 단 하루 만에 무효가 된다. 나는 어제까지 연결되어 있었지만, 오늘은 버려졌다. 퇴직 첫날 아침, 나는 출근할 곳이 없었다. 명함을 건넬 상대도 없었다. 결재할 서류도 없었다. 나는 플러그처럼, 콘센트 없이 방 안을 굴러다녔다.
그러나 플러그는 다시 쓰였다. 문을 잠그는 걸쇠로.
누군가 이 플러그를 주워서, 문고리에 걸었다. 전기를 연결하는 본래의 기능과는 전혀 상관없는 용도. 하지만 플러그는 그 역할을 해낸다. 단단한 플라스틱 몸체가 철문을 고정하고, 녹슨 고리를 감싸 안는다. 연결은 할 수 없지만, 고정은 할 수 있다. 전류를 흘려보낼 수 없지만, 무언가를 지킬 수는 있다.
세상이 요구하는 본래의 쓸모가 아니다. 내가 준비했던 기능도 아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쓰임새는 분명 존재한다.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는 은퇴 후 글을 쓴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누가 기대한 역할도 아니다. 직장에서 내가 했던 일과도 전혀 다르다. 25년간 나는 보고서를 썼다. 결재 라인을 거쳐, 승인을 받아, 실행되는 문서들. 그 문서들은 회사라는 콘센트에 꽂혀야만 의미가 있었다. 회사를 떠나면, 그 문서들은 휴지가 된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른 종류의 문장을 쓴다. 승인받지 않아도 되는 문장. 결재 라인이 없는 문장. 콘센트 없이도 작동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전기를 연결하는 대신, 단어를 연결한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누군가 읽고, 누군가 공감하고, 누군가 댓글을 단다. 회사의 전류가 아닌, 독자의 시선이 내 문장을 흐른다.
플러그는 녹슬지 않는다. 플라스틱이기 때문이다.
철문은 녹슬었다.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번졌다. 시간이 철을 부식시켰다. 비가 내리고 햇빛이 쬐고 바람이 불 때마다, 철은 조금씩 산화되었다. 그러나 플러그는 여전히 단단하다. 검은 플라스틱은 비바람을 견뎌내고, 햇빛을 버텨내며, 계속 문을 걸어 잠근다. 녹슨 철문 옆에서, 플러그는 자신의 시간을 산다.
나는 플러그의 표면을 손으로 만진다. 차갑다. 매끄럽다. 금속 핀 부분만 약간 녹이 슬었지만, 몸체는 온전하다. 이 플러그는 아마 앞으로도 십 년, 이십 년을 더 버틸 것이다. 철문이 완전히 녹아 무너져도, 플러그는 남아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삶에서는 콘센트에 꽂혀 있어야만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삶에서는 다르다. 연결되지 않아도, 전류가 흐르지 않아도, 쓸모가 있다. 고정하는 힘, 지키는 힘, 걸어 잠그는 힘.
그것이 걸쇠의 쓸모다.
철문을 뒤로하고 걷는다. 뒤돌아본다. 플러그가 여전히 문고리에 걸려 있다. 햇살이 검은 플라스틱 표면에서 반사된 작은 빛의 점이다. 그 빛이 나에게 묻는다.
너의 두 번째 삶은 무엇을 고정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