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의 증거

by 건강한 오후

알루미늄 목발이 콘크리트 옹벽에 기대어 있다. 오후 두 시, 햇살이 금속 표면에서 부서진다. 나는 그 앞에 멈춰 섰다.


목발을 들여다본다. 겨드랑이 받침대의 검은 스펀지는 땀에 눌려 있고, 손잡이 플라스틱은 손때로 반들거린다. 알루미늄의 미세한 흠집들. 이 물건이 견뎌온 하중의 기록이다.


삼 년 전 겨울, 나도 목발을 짚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을 때 발목에서 '툭' 소리가 났다. 뼈가 끊어지는 소리는 명확했다. 깁스를 하고 목발을 받았을 때, 세상은 수직의 균형을 잃었다. 겨드랑이가 짓눌렸고 손목이 비명을 질렀다. 목발 끝 고무 팁이 미끄러질 때마다 몸은 허공에서 헛돌았다.


육 주 뒤, 깁스를 풀었다. 드러난 발목은 희고 가늘었다. 빛을 보지 못한 지하 식물처럼.


"이제 목발 없이 걸어보세요."


맨발로 첫걸음을 뗐다. 발바닥이 차가운 타일을 밟았다.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자 무릎이 떨렸다. 뼈 안쪽에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손이 저절로 벽을 더듬었다.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지지대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는 공포를.


병원을 나오며 목발을 폐기함에 던졌다. 알루미늄이 부딪히며 둔탁한 금속음을 냈다. 주차장까지 걷는 오십 미터가 불안했다. 차 문을 열 때, 손에 쥐어야 할 목발이 없다는 사실이 허전했다.


그 허전함은 은퇴 후의 일상과 닮아 있었다. 편의점 점원이 무심코 "사장님"이라 불렀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회적 목발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자주 무릎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직함이라는 견고한 지지대 없이 오직 두 다리로만 생의 무게를 지탱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은 매일 아침의 시험이었다.


자전거를 탄 첫날, 십 킬로미터를 가지 못하고 멈췄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졌고 폐부에서 비릿한 쇠 냄새가 났다. 다음 날 다시 안장에 올랐다. 오르막에서 기어를 낮췄다. 뒷바퀴가 헛도는 듯하더니 이내 지면을 물었다. 무릎이 떨렸지만, 나는 페달을 밟는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떨림은 종아리를 타고 지면으로 흘러가 소멸했다.


석 달 뒤, 진주 남강 둑길 삼십 킬로미터를 달렸다. 교각 아래 물안개가 코끝에 스며들고 강바람이 뺨을 때릴 때 나는 알았다. 흔들림이 두려운 게 아니라, 다시 멈추어 서는 게 두려운 것임을.


거리의 목발 앞에 다시 선다. 이 물건을 이곳에 두고 간 사람도 나와 같은 과정을 통과했을까. 던져버리지 못하고 길가에 세워둔 저 마음은 해방일까, 미련일까.


나는 목발을 집어 근처 병원 입구 그늘에 옮겨두었다. 누군가 다시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핑계를 나 자신에게 건넸다. 진짜 회복은 목발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목발이 사라진 자리를 자신의 근육으로 채우는 일임을 나는 아직 다 배우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그 길을 지났다. 목발은 사라졌다. 안도와 섭섭함만 길가에 남았다. 내가 기댈 수 있었던 마지막 '만약'의 가능성마저 세계에서 삭제된 것이다.


나는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는다. 남강 물살이 교각을 휘감는 낮은 신음 속으로 내 그림자가 흩어진다. 나는 나아간다. 목발 없이. 기꺼이 흔들리며.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