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이미 노 피플 존에 살고 있었다

by 건강한 오후

책 정보:

- 제목: 노 피플 존

- 저자: 정이현

- 출판일: 2025년 10월 21일

- 장르: 소설(단편집)


아침이 오면 나는 혼자 커피를 내린다.


필터에 원두를 담고, 물을 천천히 부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을 걸어올 사람이 없으니까. 창밖으로 겨울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거실은 조용하다. 커피 향이 퍼지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순이다. 마지막으로 사무실 불을 끄던 날을 아직 기억한다. 특별한 감회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이후의 삶으로 이어졌다. 주변에서는 가끔 묻는다. 외롭지 않냐고. 나는 그때마다 적당한 말을 고르다가 결국 웃고 만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른 것이다. 그 차이를 설명할 말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정이현의 소설 『노 피플 존』을 읽은 건 그즈음이었다.


정이현은 이 소설에서 한 가지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인물을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의 핑계도, 꼰대의 간섭도, 타인의 서사를 침범하는 욕망도 — 작가는 그것들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냥 인간의 내부에서 자라나는 것들로 기록한다. 그 냉정한 거리가 곧 이 소설의 문체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감정을 호명하지 않고 장면으로 대신한다. 그래서 독자는 인물을 미워하다가 어느 순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췄다.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면 그게 누구든

얼마나 어리든 또는 얼마나 늙었든 자신이 있는 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노 피플 존." — P157


노 키즈 존에서 출발한 생각이 노 피플 존으로 번지는 순간. 작가는 이것을 냉소나 혐오로 쓰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내면에서 자라난 욕망으로, 담담하게 기록한다.


나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내가 먼저 멀어졌다. 이유를 대자면 여러 가지지만, 결국 귀찮았던 것이다. 노 피플 존.


소설 속 인물들을 읽으면서 나는 아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2015년 겨울이었다. 입사 3년 차 후배가 기획안을 들고 왔다. 나는 끝까지 듣지 않았다. 절반쯤 듣다가 "내가 그 나이 때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꺼냈다. 후배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한 척했다. 아니, 보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정이현은 그런 사람들을 악인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냥 인간으로 그린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한 번 멈춰야 했다.


노 피플 존을 나는 처음에 개인의 선택으로 읽었다. 소란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조용한 경계. 그런데 책장을 덮고 나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두 각자의 노 피플 존 안으로 들어가버린다면, 그 바깥에는 무엇이 남는가. 배제가 개인의 취향이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취향이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누군가는 타인의 노 피플 존 바깥으로 밀려났다. 나이 든 사람도, 느린 사람도, 말이 많은 사람도. 나는 지금 그 경계 안쪽에 앉아 있지만, 언젠가 나도 그 경계 바깥으로 밀려날 것이다. 어쩌면 이미 밀려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이 불편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노 피플 존을 원하는 마음이 틀리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모두의 소망이 될 때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를 작가는 말하지 않은 채 독자에게 넘긴다. 나는 그 질문을 아직 들고 있다.


그러다 이 문장을 만났다.


"아주 멀리 온 것 같은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던 기분이다." — P304


책을 덮었다.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30년을 달렸다. 방향이 없었다. 있다고 믿었을 뿐이다. 달리면 어딘가에 닿는다고 믿었다. 제자리 뛰기. 땀은 흘렸다. 하지만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앞에 두고, 나는 그 30년이 어떤 모양이었는지를 처음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달리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멈추고 나서야 보인다.


소설의 또 다른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모든 멈춘 것은 퇴색하고 틈이 벌어지고 낡아간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는 제자리에서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다." — P219


고독이 정지는 아니다. 나는 요즘 매일 글을 쓴다. 책을 읽는다. 산책을 한다. 이 글도 그 움직임의 하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멈추지 않기 위해서다.


혼자다. 그래도 바스러지지 않으려고.


소설의 마지막 부근에서 나는 다시 한번 멈췄다.


"모르는 새 내가 팔아버린 것과, 내가 빼앗긴 것을,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래도록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 P338


지금의 나는 그 목록을 이렇게 본다.


팔아버린 것.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직장을 선택하면서 조용히 내려놓았다. 후회는 아니다. 다만 그 선택이 무엇을 닫았는지는 안다. 빼앗긴 것. 시간이다. 젊음이다.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아보게 되는 것들이다. 잃어버리지 않은 것.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커피가 식기 전에 한 모금을 마셨다. 별것 아닌 일이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늘 식고 나서야 마셨다. 무언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