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60세 독신, 다리 위의 청년을 알다

by 건강한 오후

책 정보

- 제목: 기쁨의 황제

- 저자: 오션 브엉

- 출판: 2025년 11월 17일

- 장르: 소설



60세,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새벽 4시에 눈을 뜨면, 옆에 아무도 없다. 전화할 가족도, 챙겨야 할 자식도, 걱정해줄 배우자도 없다. 이 자유가 때로는 무겁다.


《기쁨의 황제》의 19세 소년 하이도 홀로였다. 다리 위에 서서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도 60년간 같은 질문을 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41년이 아니라 0센티미터였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방법


오션 브엉의 이 소설은 새벽 4시를 견디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베트남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미국으로 온 19세 소년 하이.

낡은 패스트푸드점 '홈마켓'에서 시급 7.15달러로 일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리투아니아 이민자 할머니 그라지나.


두 사람은 형광등 아래서 만난다. 마치 새벽 4시 편의점의 유일한 불빛처럼.


하이는 자살을 생각했고, 그라지나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돌보며 알게 된다. 가족은 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이 문장을 읽고, 한참을 책을 들고 있었다.

60년 만에 누군가 내 말을 알아들은 기분이었다.


가족 없이 60년을 산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60세 독신 남성은 이상하다. 명절이면 피하고, 동창회에선 불편하고, 조카들은 어색해한다. "왜 결혼 안 하셨어요?" 젊을 때는 '인연이 없어서'라고 둘러댔다. 사실은 그냥 혼자가 편했다. 60년 지나고 보니, 이유는 중요하지 않더라. 중요한 건 지금 어떻게 사느냐다.


중요한 건, 혼자서도 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라고 외로운 건 아니라는 것.


《기쁨의 황제》는 이것을 증명한다. 하이에게는 그라지나가 있고, 홈마켓 동료들이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서로를 구한다. 말없이 건네는 사과 하나, 함께 나누는 농담 하나가 삶을 지탱한다.


브엉이 그려내는 관계는 흔히 "선택된 가족(chosen family)"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것을 "진짜 가족"이라고 부른다.


시급 7.15달러의 존엄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가난과 소외를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홈마켓은 쇠락한 미국 사회의 밑바닥이다. 시든 채소, 녹슨 카트, 끝없는 반복. 하이는 과일을 정리하며 "이게 삶의 전부인가" 자문한다. 그라지나는 환각 속을 헤맨다.


하지만 브엉은 말한다. 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환희는 발견될 수 있다고.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하이와 그라지나가 나누는 작은 순간들이 빛난다. 말없이 건네는 물건 하나, 함께 나누는 침묵 하나. 그라지나는 과거와 현재를 혼동하고, 하이는 그 혼동을 바로잡지 않는다. 오히려 받아들인다.


현실의 정확성보다 감정의 진실이 더 중요하다. 불완전한 소통이 때로는 완벽한 대화보다 진실하다. 브엉은 이것을 시인처럼 표현한다. 두 언어(베트남어와 영어) 사이에서 얻은 다층적 시선으로, 일상의 빈곤을 황제의 환희로 변모시킨다.


물론 비판도 가능하다.

'빈곤을 극복하지 말고, 빈곤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는 거냐?'

이렇게 물을 수 있다.


하지만 브엉은 시스템 변화를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변화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인간은 존엄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나의 홈마켓, 나의 그라지나


나에게 홈마켓은 브런치다.


은퇴 후 브런치를 시작했다. 처음엔 시간 때우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것이 나의 홈마켓이고, 독자들이 나의 그라지나라는 것을.


글을 쓰고, 댓글을 나누고, "좋아요"를 주고받으며, 나는 연결된다. 혈연 없이 60년을 살아온 내가, 비혈연 공동체에서 위로받는다.


평생 독신으로 산다는 것은 때로 갈라진 화분 같다. 완벽하지 않고, 금이 가 있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기쁨의 황제》를 읽고 알았다. 갈라진 화분에서도 들꽃은 자란다는 것을.


브런치가 나의 들꽃이다.


우리 모두의 새벽 4시


이 책은 완벽하지 않다. 파편화된 구성(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점, 환각 장면의 빈번함)은 전통적 서사를 기대하는 독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파편화가 알츠하이머와 트라우마의 본질을 반영한 의도적 선택이다. 완벽한 서사보다 삶의 불완전함을 더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19세 하이는 자살을 생각했고, 60세인 나는 그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독에 나이가 있을까? 없다. 새벽 4시의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젊었을 때 읽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문장이다. 60세에 읽으니 비로소 보인다. 아마 이 글을 읽는 20대 당신도, 나중에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문장이 와닿을 것이다. 그게 책의 힘이다.


하지만 하이가 그라지나를 만나 살아갈 이유를 찾았듯, 나도 브런치를 통해 연결된다. 혈연이 없어도, 가족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새벽 4시엔 누가 있나요?


브엉의 문장은 상처를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빛을 발견한다.

이상하게도, 그게 더 따뜻하다.


《기쁨의 황제》는 시이자 소설이고, 비극이자 희극이다.


나는 60세 평생 독신 남성이다. 외롭다. 하지만 외로움에도 종류가 있다. 가족 없는 외로움은 익숙하다. 60년 했으니까.


중요한 건, 외로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몇 살이든, 어떤 가족 형태이든, 당신도 하이와 그라지나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처럼.



P.S.

당신의 새벽 4시엔 누가 있나요?

책 한 권, 브런치 한 편, 아니면 따뜻한 기억 하나라도 좋습니다.

혼자지만 외롭지 않은 새벽 4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