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정보:
- 제목: 왜의 쓸모
- 저자: 찰스 틸리
- 출판일: 2025년 8월 4일
- 장르: 인문 교양
혼자 사는 집에서, 나는 그날 밤 오래 생각했다.
사과는 했다. 이유도 댔다. 그런데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25년 직장 생활 동안 나는 보고서 한 줄, 결재 한 장으로 수십 명을 움직인다고 믿었다. 그런데 퇴직 후 오래된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하는 말이 자꾸 겉돌았다. 나는 여전히 요점부터 말하고 있었고, 그는 안부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찰스 틸리의 《왜의 쓸모》를 펼친 건 그 밤이었다.
콜롬비아대학교 사회학자였던 틸리는 평생 권력과 불평등을 연구했다. 그가 말년에 남긴 이 얇은 책의 질문은 하나다. 인간은 왜 이유를 말하는가.
그는 말한다. 이유는 진실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고. 그것은 지금 내가 당신과 어떤 관계에 서 있는지를 확인하는 신호라고. 이유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상대와의 관계를 정립하고, 때로는 자신의 지위를 방어하는 사회적 접착제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이유를 네 가지로 나눈다.
관습은 관계의 균열을 막는 예의라는 갑옷이다. 동료의 서류에 커피를 쏟았을 때 "미안해요, 내가 워낙 덤벙대는 성격이라서요"라고 말하는 것. 복잡한 물리적 이유 대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공식을 내미는 행위다. 진실보다 적절함이 우선되는 언어다.
이야기는 설득의 도구다. 우리는 복잡한 사건을 단순화하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거나 칭찬하는 도덕적 판단을 가미한다. 인간은 사건 그 자체보다 납득할 만한 서사를 믿는다.
코드는 시스템의 권위를 빌린 선언이다. "규정상 안 됩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다. 법률과 규칙 뒤에 숨어 권위를 확인하는 행위다. 인과적 타당성보다 기존 규칙과의 정합성이 핵심이다.
학술적 논고는 전문 지식에 기반한 고도의 설명이다. 집단 내 관계를 공고히 하지만 대중에게는 문턱이 높다. 의사가 환자에게 라틴어 병명을 말할 때,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거리를 만드는 행위다.
나는 책을 읽다가 손이 멈췄다.
틸리는 쓴다. "이유를 제시하는 방식은 관계의 성격을 반영하며, 동시에 그 관계를 재확인한다." 평생 나는 코드에 가장 능숙한 사람이었다. "규정상 안 됩니다." "절차대로 하세요." "시키는 대로 해." 나는 이유를 설명한 게 아니었다. 이유를 생략할 수 있는 위치를 이용한 것이었다.
권력은 이유를 생략한다.
틸리의 이 한 줄 앞에서 나는 한동안 책을 덮었다. 부하 직원들에게 던졌던 "그냥 하라면 해"라는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효율이라고 불렀고, 결단이라고 했다. 그러나 틸리에 따르면 그건 다른 말이었다. 당신은 설명을 들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선언.
예순이 넘어서 처음 알았다.
책에는 정신과 의사의 사례가 나온다. 의사가 환자에게 "나에게 그 말을 하지 마라"고 단호하게 끊는 장면이다. 말의 내용보다 말하는 주체와 듣는 주체의 관계를 고정하려는 권력 작용이라고 틸리는 분석한다. 읽다가 나는 웃었다. 그게 웃음인지 씁쓸함인지 모를 채로. 나도 그랬다. 부하 직원이 문제를 가져오면 내용보다 먼저 "그래서 네 생각은 뭔데?"라고 되물었다. 질문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선언이었다. 나는 이미 판단을 내린 상태였고, 그 질문은 그의 입을 막기 위한 코드였다.
더 서늘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이유와 사과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유를 강요함으로써, 그를 아랫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 나는 25년 내내 그걸 했다. 직장에서도, 그 바깥에서도.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유는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틸리는 쓴다. 낯선 사람에게는 "잠깐 멍했네요" 한마디로 충분하다. 그러나 오래된 친구는, 가끔 만나는 가족은, 내가 왜 멍했는지 그 순간 내 마음이 어디를 헤맸는지를 듣고 싶어 한다. 두 번째 줄에 앉은 사람의 표정 때문이었는지, 갑자기 오래전 기억이 스쳤는지, 그 구체적인 인과까지. 가까울수록 이유는 길어진다.
나는 평생 거꾸로 살았다.
가장 오래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나는 가장 짧은 문장을 사용했다. 밖에서는 예의와 논리를 차려 입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는 "그냥"이라는 권력의 언어를 내밀었다. 이유를 가장 정성껏 설명해야 할 사람들에게 이유를 가장 많이 생략했다.
연락하는 사람이 줄었는데, 남은 사람들의 얼굴이 더 또렷해졌다. 그래서 더 이상 "그냥"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며칠 전, 오랜 친구에게 처음으로 "오는 길에 네 생각이 났어"라고 말했다. 어색했다. 그런데 친구가 잠시 침묵하다가 "나도 그런 적 있다"고 했다. 이유가 사람을 이을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어렴풋이 알았다.
이제 나는 달리 말하려 한다. 사과 대신 이야기를. 코드 대신 고백을.
오늘 누군가에게 생략해버린 그 이유가, 나처럼 권위의 습관이었던 건 아닐까.
올해 예순, 나는 지금 이유를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