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가 있다. 진흙을 이겨 불에 구워낸 검붉은 등들이 서로의 몸을 포개고 누워 있다. 기와는 스스로 서지 못한다. 앞엣것의 꼬리를 뒤엣것이 덮고, 옆엣것의 어깨를 제 몸으로 누르며 기와는 비로소 지붕이 된다. 햇빛이 기와 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른다. 빛이 닿는 붉은 곡선은 팽팽하게 달아오르고, 그늘진 골짜기는 심연처럼 깊다. 같은 흙으로 빚어 같은 불을 통과했어도, 놓인 각도와 시간의 풍화에 따라 기와의 얼굴은 제각각이다.
완벽한 질서다. 기와들은 모두 같은 규격이고 같은 무게다. 이 동일함이 집의 안녕을 보장한다. 한 장의 기와는 아래 기와를 지지하고, 다른 기와는 다시 그 위를 덮어 누른다. 아래는 위를 받쳐 안고, 위는 아래를 짓누르며 하중을 분산한다. 견고함은 이 지루하고도 무거운 반복에서 나온다. 지붕 위에는 수천 마리의 검은 용들이 비늘을 세우고 잠든 듯한 적막이 흐른다. 기와의 나란함은 집의 골격을 지키는 침묵의 서약이다.
한 장이 솟았다. 불쑥 솟아올라 평온하던 대열의 선을 침범한다. 나란함이 깨졌다. 그 기와 한 장이 스스로의 각도를 비틀었다. 전체의 규율을 거스르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든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습한 그림자가 고인다. 어긋남은 매혹적이지만, 지붕 위에서 일탈은 물이 새는 시작이다.
기와의 질서는 미학이 아니라 생존의 기능이다. 기와는 비바람을 막고 지붕의 무게를 나누어 기둥으로 전달한다. 그 기능은 오직 '나란함'이라는 형벌 위에서만 가능하다. 단 하나의 비틀림은 폭우가 새어 드는 구멍이 되고, 칼바람이 파고드는 통로가 된다. 균형을 잃는 순간, 서까래가 썩고 기둥이 기운다. 솟아오른 기와 한 장이 집 전체를 무너뜨린다.
나는 담장 위에 솟은 그 기와를 본다.
올해 예순이 되었다. 이제 나에게 질서는 곧 일상이다. 아침 일곱 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는 것은 수십 년간 몸에 새겨진 나란함의 관성이다. 창밖에 비가 오고 눈이 쌓여도, 내가 깨어나는 시간과 주전자가 끓는 소리는 일정하다. 혼자 차를 마시고, 혼자 식탁에 앉아 끼니를 때운다. 커피 향이 방을 채우고 새소리가 창가를 두드려도 테이블은 나 하나다. 이 반복되는 질서가 나를 지탱하지만, 때로는 질식할 것 같은 무게로 나를 누른다.
어떤 날은 그 무게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나서 화면을 닫는 순간,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질 때. 댓글 하나가 달리기를 기다리다가 결국 노트북을 덮을 때. 나는 잘 배열된 기왓장 하나다. 제자리에 누워 제 무게를 견디고 있는. 그것이 오늘의 나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아직 좁히지 못한 틈이 있다.
튀어나온 기와는 유혹한다. 너도 이제 그만 네 자리를 떠나보라고. 예순이라는 대열에서 이탈해 너만의 각도를 세워보라고. 나란한 것들 사이에서 혼자 솟아올라 네 각도로 하늘을 향해 보라고 속삭인다.
40대 어느 늦은 오후의 회의실이 떠오른다. 형광등 불빛 아래 ㄷ자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의 고개가 차례로 끄덕여지던 순간. 나만이 다른 문장을 목구멍까지 밀어 올렸다. 보고서의 숫자가 틀렸고, 매출 예측이 빗나갔으며, 우리가 가는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예(YES)를 말할 때 혼자 아니오(NO)라고 외치며 저 기와처럼 솟아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입을 다물었다. 뜨거운 문장을 삼키고 나도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솟아오르는 순간, 내 직함 아래에서 나를 받치고 있던 수많은 기왓장들이 한꺼번에 흔들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혼자 술을 마셨다. 비겁하게 대열 속에 머리를 박은 내가 싫었다. 그러나 만약 그때 내가 솟아올랐다면, 그 파장으로 흔들렸을 누군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다시 그 기와 앞에 선다. 그리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기왓장들의 무거운 침묵을 듣는다. 저 기왓장들도 솟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산길의 가파른 경사에서 페달을 있는 힘껏 밟으며 대열을 추월하고 싶었던 나처럼, 혹은 밤새 쓴 글 한 줄이 마음에 들지 않아 통째로 지워버리며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나처럼. 기왓장들도 제 자리를 박차고 하늘로 일어서 제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와는 말이 없다. 그저 서로를 누르고 받치며 닥쳐올 비바람을 견딜 뿐이다. 예순의 나도 그렇게 여기 있다. 솟지 않은 채로, 누르고 받치며. 나의 단조로운 반복들이 실은 기왓장들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고 있던.
그 무거운 침묵이, 비로소 나를 지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