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골의 황금

by 건강한 오후

갯벌이 있다. 검은 갯벌이다. 물이 빠진 자리에는 무수한 생명체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게 자국은 손가락 두 마디 크기로 물결 모양을 그렸다. 조개 구멍은 입김처럼 습기를 머금은 채 빛난다. 갯지렁이가 뒤집어놓은 흙더미는 작은 봉분처럼 솟아 있다. 발밑 흙은 축축이 젖어 발자국 하나 새기기 벅차다.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득하다.


갯벌은 침묵한다. 단단하게 제 몸을 지키며 검은 침묵으로 시간을 견딘다. 냄새가 난다. 짠내와 흙내가 뒤섞인, 생명의 냄새다. 벌교 앞바다가 탁 트이고, 그 넓음 앞에서 침묵은 오히려 풍요롭다.


갯벌 위에 물길이 있다. 갯골이다. 뱀처럼 휘어지고 구부러져 바다로 흘러간다. 직선이 없다. 물길은 갯벌의 지층을 더듬어 가장 낮은 곳을 찾는다. 좁은 틈에서 거품을 일으키고, 굴곡마다 소용돌이가 춤춘다. 손끝을 담그면 차갑다. 코끝엔 짠내가 스며든다. 서두르지 않는다. 막히면 돌고, 좁아지면 깊어진다. 길은 흙 속으로 파고들어 굴곡의 무늬를 남긴다. 그 무늬를 나는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때 동쪽이 밝아왔다.


태양이 뜬다. 수평선을 뚫고 솟아오르는 붉은 원은 압도적이다. 하늘 전체가 달아오른다. 주황빛 선이 수평선에서 서서히 퍼지며 바다 위를 덮는다. 그 빛이 갯골에 닿는다.


물길이 황금색으로 변한다.


나는 숨을 멈췄다. 검은 갯벌 위에 황금의 띠가 길게 굽이쳐 흐른다.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히 번진다. 빛은 물길의 굴곡을 따라 살아 움직이듯 흘렀다. 그 빛 안에서 갯골은 처음으로 달랐다.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까지 저 물길은 그냥 검은 흙 사이를 흐르는 물이었다. 빛 하나가 바꾸었다.


찰나다. 물길이 황금으로 빛나는 시간은.


빛은 지나갔다. 해가 조금 더 오르자 각도가 바뀌었다. 황금빛은 천천히, 천천히 거두어졌다. 마지막까지 물길 한 굽이에 빛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곧 사라졌다. 갯골 깊은 곳, 빛이 닿지 않는 굽이가 있었다. 거기도 물은 흘렀다. 물길은 다시 검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장 낮았던 밤이 있었다. 25년 직장 생활의 끝 무렵, 사무실 불을 혼자 끄던 밤. 스위치를 내리자 복도가 어두워졌다. 내 발소리만 남았다. 나가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빈 책상들이 어둠 속에 줄지어 있었다. 그것이 내 갯골이었다. 그 낮은 자리에서 빛 없이도 흐르는 물소리를 들었다.


나는 갯골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매일 같은 자리에 고여 있지 않은가. 아니면 낮은 곳을 찾아 흐르며, 빛이 닿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가.


대답하지 못했다. 흐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확신이 없었다. 책상 앞에 앉아 아무것도 쓰지 못한 날들이 떠올랐다. 창밖만 보다 저녁을 맞은 날들도. 고임인지 기다림인지, 아직 모른다. 갯골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굽이치며 바다로 나아갔다.


일상의 틈이다. 갯벌의 모든 침묵과 고독이 이 하나의 황금빛 물길을 위해 존재했던 듯하다. 갯골 물소리만 멀리서 들려왔다. 은퇴 후 혼자 버티는 시간들도, 아직은 모른다.


빛은 찰나였고, 검음이 본래였다. 알면서도 나는 한참을 더 서 있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