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에서 데이터까지 1화

유발 하라리의 세계와 '나'의 길

by 건강한 오후

프로로그 : 거대한 시간, 작은 나


인류는 수십만 년의 역사를 살아왔다. 사피엔스는 불을 지피고, 신화를 만들고, 제국을 세우며 지구의 주인이 되었다. 그러나 이 긴 여정 속에서 늘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버스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지금 이 순간의 나 역시, 수만 년 전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던 조상과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의 세 권의 책, 『사피엔스』,『호모 데우스』, 『넥서스는』는 이 질문에 대한 서로 다른 시대의 대답을 담고 있다.


나는 이 책들을 단순히 요약하며 읽고 싶지 않다. 대신 그가 펼쳐 보인 거대한 지도를 나의 일상, 즉 알고리즘의 추천에 흔들리는 불안감과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 위에 겹쳐놓고 다시 묻고 싶다.


이 세 편의 에세이는 과거·미래·현재라는 시간의 축 위에서, 인간다움의 본질을 성찰하려는 작은 기록이다. 거대한 역사 앞에서 한 개인이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의 모음이기도 하다.





『사피엔스』 :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나는 스마트폰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주식 차트를 확인하고, 회사에서는 '성과'라는 숫자로 평가받았으며, SNS에서는 '좋아요' 개수로 인정받으려 한다. 심지어 건강관리 앱은 내 걸음 수마저 점수로 매긴다.


문득 의문이 든다. 이 모든 것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조상들보다 나는 정말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으며 소름이 돋았던 이유는, 그가 인류 성공의 비밀을 '허구'라는 단 하나의 단어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 법, 돈, 국가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며 낯선 이와도 협력할 수 있었던 능력. 그것이 인류를 다른 종과 구분 짓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는 것이다. 침팬지는 아무리 똑똑해도 150마리 이상 무리를 이루지 못하지만, 인간은 '대한민국'이라는 허구를 믿기에 5천만 명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문제는 이 허구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는 점이다. 농업혁명은 풍요를 약속했지만, 그 풍요는 소수의 권력자에게 집중되었고 다수는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렸다. 제국의 신화는 광대한 협력을 가능케 했지만, 그 대가로 수많은 이들이 전쟁터에서 쓰러졌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선은 대부분 허구 위에서 그어졌고, 허구를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진화가 선사한 협력의 능력이, 서로를 가두는 족쇄로 변질된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니 내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오늘도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며 하루의 기분을 저울질한다. 주식 계좌의 숫자가 오르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떨어지면 온종일 무너진다. '시장'이라는 거대한 허구가 나의 기쁨과 불안을 실시간으로 조종한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도 마찬가지다. 종잇조각이나 통장의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내 존재의 가치를 규정하는 듯 느껴졌다. 더 많이 벌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같고, 적게 벌면 실패자가 된 기분이었다. 과거의 인류가 보이지 않는 신을 두려워했다면, 나는 데이터와 그래프를 숭배한다.


허구는 여전히 내 삶의 구속자이며, 나는 그 감옥의 벽 안에서 발버둥 친다. 하지만 가장 큰 아이러니는, 이 모든 걸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월요일 아침마다 출근했던 이유도, 퇴근 후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던 이유도, 주말에 카페에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는 이유도 결국 다 허구가 만든 질서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허구의 주인인가, 아니면 허구의 포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