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마부인〉에서 넷플릭스까지, 변하지 않은 검열의 본질
1982년 정인엽 감독의 〈애마부인〉은 태어나자마자 이름부터 빼앗겼다. 문화공보부는 "愛馬가 음란하다"는 이유로 억지스레 '愛麻'로 고쳐 달았다. 제목 한 글자에도 권력이 개입하던 시절, 영화는 시작부터 잘려 나가야 했다.
검열은 한국 영화사의 첫 화면이었다. 일제는 1922년 「흥행장 및 흥행 취체 규칙」으로, 총독부는 「조선영화령」으로 영화를 지배했다. 해방 이후에도 미군정과 군사정권은 검열의 가위를 쥐고 있었다. 시나리오 삭제, 필름 재편집은 창작자들의 일상이었다. 검열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서사를 절단하는 칼날이었다.
1996년 헌법재판소는 공연윤리위원회의 영화 심의 제도를 "헌법이 금지한 사전검열"로 규정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켜냈다. 그러나 자유는 완전하지 않았다. 심의는 등급 분류로, 상영 보류라는 다른 얼굴로 살아남았다. 검열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창작의 칼날은 권력이 아니라 자본에서 나온다. OTT 플랫폼은 투자비와 수익성, 글로벌 흥행 가능성으로 작품의 생사를 가른다. "외설스럽다"라는 문공부의 가위 대신, "흥행성이 불확실하다"라는 자본의 계산이 창작을 멈추게 한다. 도전적 실험은 '투자 위험'으로 분류되고, 안전한 장르와 스타 배우만이 선택된다.
관객도 공모자가 되었다. 클릭 수, 시청 시간, 구독률이 자본의 언어로 환산된다. 시장의 논리가 민주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은 플랫폼 알고리즘이 관객의 눈길을 길들이고 있다. 다양성은 축소되고, 비슷한 포맷의 '흥행 안전작'이 줄을 잇는다.
물론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처럼 세계적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가 오히려 구조의 견고함을 증명하는 사례일 뿐이다. 독립영화는 전체 상영 비중의 5% 미만에 그치며, 예술영화는 배급망에서 고전한다. 보이지 않는 검열의 벽은 여전히 높다.
칼날은 사라졌지만 지갑은 더 무겁고 은밀하다. 법적으로는 자유가 보장된 듯 보이지만, 시장 논리 안에서 표현은 여전히 제한된다. 우리는 정말 자유로운가, 아니면 또 다른 검열 속에서 안락을 착각하고 있는가.
독립영화관을 찾고,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갖고, 알고리즘이 추천하지 않는 작품까지 살펴보는 일. 그 작은 선택들이 창작의 자유를 지키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