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안에 담긴 견딤의 무게
강가를 걷다가 발끝에 걸린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손바닥 안에 가만히 눌러 있는 그 무게는, 말 한마디 없는 세월이었다. 돌은 스스로를 닳게 한 적이 없었다. 다만 강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계절이 겹겹이 덮였을 뿐이었다. 모서리는 무뎌지고 표면은 매끈해졌지만, 그 안의 시간은 단단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돌멩이의 단단함은 견딤이 굳어져 이루어진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돌멩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검은빛을 띠고 있었는데, 단순히 검은색이라기보다는 숯을 닮은 검정, 혹은 짙은 밤하늘의 색이었다. 햇볕에 달구어지고 빗물에 식고, 서리에 얼고 해빙에 풀리기를 수천 번 되풀이한 끝에 얻은 깊이였다. 그 깊이를 들여다보며 나는 문득 내 손마디의 관절이 굵어진 것을 느꼈다. 나 역시 나를 닮게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살아온 날들이, 스쳐 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견디고 흘려보낸 시간이 내 살과 뼈를 다듬었을 뿐이었다.
강은 쉼 없이 흘렀다. 어제도 흘렀고 오늘도 흐르고 내일도 흐를 것이다. 물은 돌을 만나면 돌아가고, 돌은 물을 만나면 기다린다. 물은 급하고 돌은 느리다. 물은 소리를 내고 돌은 침묵 한다. 그러나 결국 물리 이기는 것도 돌이 이기는 것도 아니다. 둘은 서로를 닮아간다, 나는 흘러가는 것과 머무는 것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배웠다.
내가 집어 든 돌은 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누군가의 발길에 차여 왔을 것이고, 빗물에 떠밀려 왔을 것이고, 바람에 굴러왔을 것이다. 돌은 제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진 시간을 견딘다. 마치 사람처럼. 손 안의 돌을 쥐었다 폈다 하며 걸었다. 그 무게가 손목으로, 팔로, 어깨로 전해졌다. 그것은 단순한 물리적 무게가 아니었다. 시간이 축적된 무게였고, 침묵이 압축된 무게였고, 견딤이 응결된 무게였다.
강변의 버드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가지 끝이 물면을 스쳤다가 떨어졌다. 나뭇잎들이 물 위에 떨어져 떠내려갔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물도, 바람도, 계절도, 사람도. 돌은 그 모든 흐름 속에서 남는다. 떠내려가면서도 남고, 굴러가면서도 머문다. 나는 그 영속성에 작은 위안을 얻었다. 덧없는 삶 속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 헤매는 나의 내면을 돌이 묵묵히 위로하는 듯했다.
나는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거칠었다. 논밭을 일구고, 연장을 다루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온 손이었다. 그 손등의 검버스름한 반점들을, 굵어진 마디들을 나는 돌멩이를 만지며 기억했다. 아버지도 스스로를 닮게 하지 않았다. 세월이 그를 다듬었고, 노동이 그를 깎아냈고, 삶이 그를 매만졌다. 돌의 침묵 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말 없는 사랑을, 그 견고한 삶의 무게를 느꼈다.
돌은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손 안의 돌은, 내가 잊은 모든 날들의 무게를 고요히 건넨다. 물살 속에 있었던 날, 햇볕에 말라 있던 날, 얼음 속에서 숨죽이던 날. 그 모든 날이 돌 속에 묻혀 있었다. 사람들은 돌을 보지도 않고 지나간다. 돌은 항의하지 않는다.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저 제자리에 다음 발길을, 다음 계절을, 다음 빗물을 기다린다. 나는 그 인내를 부러워했다. 그 담담함을 흉내 내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서 책상 위에 돌을 올려놓았다. 책들 사이에, 펜들 사이에 놓인 돌은 이상하게도 어울렸다. 글을 쓰는 도구들과 침묵하는 돌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글도 결국 시간을 견디는 일이고, 침묵을 깨뜨리는 일이며, 단단함을 추구하는 일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그 돌을 만졌다. 막힌 문장 앞에서, 찾지 못하는 단어 앞에서,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 때마다. 돌의 차가움이 손끝을 통해 전해졌다. 그것은 조급함을 가라앉히는 차가움이었다.
어느 날 밤, 나는 그 돌을 주머니에 넣었다. 언젠가 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돌은, 내가 잊은 강가의 모습과, 발끝에 차였을 때의 작은 떨림과, 첫눈이 내리던 날의 차가움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주머니 속 돌을 만지며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이 돌이 강에 있었던 시간과 내가 이 세상에 있었던 시간을. 돌의 시간이 더 길었다. 아마 앞으로도 더 길 것이다. 나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이고, 돌은 오래 머무는 존재다. 그러나 이 순간만은 우리가 함께 있다. 돌과 나, 침묵과 언어, 영원과 찰나가 한 손안에 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길지 않은 만남이라도, 깊지 않은 이해라도, 이 순간의 온기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