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주던 가게

대형마트 시대, 사라진 관계의 온기

by 건강한 오후

문을 열면 방울 소리가 울렸다. 카운터 위에는 낡은 주판과 외상 장부가 놓여 있었고,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오늘은 뭐 사로 왔노?"하고 물으셨다. 동네 구멍가게는 그렇게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과자를 고르는 동안 할머니는 엄마 안부를 묻고, 나는 학교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그곳에는 있었다.


그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24시간 켜진 편의점이 들어서고, 대형마트가 더 싸고 다양한 상품을 내세우며 골목 상권을 흔들었다. 사람들은 더 편리한 곳을 찾아갔고, 작은 가게들은 버텨내지 못했다. 그렇게 동네에서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오늘날 우리는 더 편리한 세상에 산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집 앞에 상품이 도착하고, 편의점에서는 24시간 언제든 필요한 걸 살 수 있다. 가격 비교도 쉽고, 재고 걱정도 없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누구에게도 불리지 않는 익명의 손님이 되었다. 바코드를 찍는 기계음만이 우리의 구매를 확인해 줄 뿐이다.


최근 젊은 세대들이 다시 동네책방이나 독립서점을 찾는 현상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에는 책방 사장의 추천 글귀를 사진으로 남기거나, 단골 빵집의 신제품을 공유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효율성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를 그들도 갈구하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을 기억해 주고, 취향을 알아주고, 안부를 묻는 그런 관계 말이다.


동네 할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용돈이 부족하면 "다음에 갖다 주면 된다"며 외상 장부에 내 이름을 적어주셨다. 그 신뢰는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 주는 표시였다. 그곳에서 나는 손님이 아니라 이웃이었다.


골목 가게가 사라지면서 함께 사라진 것은 무엇일까. 우연히 마주치는 이웃들과의 안부 인사, 아이들이 모여 놀던 가게 앞 공간, 동네 소식이 오가던 정보 교류의 장. 결국 우리가 얻은 편리함의 대가는, 내 이름을 불러주던 따뜻한 존재와 서로를 기억하고 돌보던 소중한 관계였을지 모른다.


문득 궁금해진다. 당신의 동네에는 아직 당신의 이름을 기억해 주는 가게가 남아있는가. 방울 소리와 함께 시작되던 하루, 이름으로 불리던 그 온기를 되새기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다시 공동체를 잇는 첫걸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