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돌아온 밤이었다. 현관문을 닫자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시계는 째깍거리고 있었지만, 시간은 공중에 붙어 정지해 있었다.
늘 바쁘게 돌아가던 발걸음이 멈추고, 늘 무언가를 말하던 입이 닫혔다. 늘 흔들리던 마음의 나뭇가지들이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그 고요는 평온이 아니었다. 숨이 막혔다. 움직임이 없는 세상은 죽은 것 같았다. 소리가 없는 세상은 나를 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움직였다. 텔레비전을 켰고, 라디오도 켰다. 뉴스 앵커의 목소리, 드라마의 배경음악, 흘러나오는 노래. 인공적인 소음들로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고요를 쫓아내고 싶었다. 소리로 고독을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소음은 고요를 깨지 못했다. 오히려 고요는 소음 속에서 더욱 선명한 형태로 존재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도 혼자만 귀마개를 낀 것 같았다. 나는 가장 크게 떠드는 소리 옆에 갇힌 채, 꼼짝없이 고요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결국 나는 리모컨을 들어 전원을 껐다. 모든 소리가 사라지자, 갑자기 온 세상이 귀가 되었다. 그제야 들리는 것들이 있었다.
바람 소리에 묻혀, 텔레비전 소리에 묻혀, 늘 놓쳤던 소리들. 가장 먼저, 내 숨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소리, 들숨과 날숨의 규칙적인 리듬. 그다음,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생명의 둔탁한 북소리.
그리고 마침내, 오래 잊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해라. 급하게 할 일은 없다."
오래전 내가 서둘러 무언가를 하려 할 때마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답답해했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가는데 왜 천천히 해야 하는가.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멈춘 이 고요 속에서 그 말이 비로소 들렸다. 아버지의 삶은 느린 것이 아니었다. 가장 온전한 속도였다.
나는 베란다에 나가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불빛이 정지해 있었다. 흔들리던 나뭇가지도,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내 마음도, 아버지의 부재 앞에서 비로소 멎음이라는 자리에 가만히 섰다.
바람이 불 때는 모든 것이 흐릿하고 흔들렸다. 나도 따라서 흔들리며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니 세상이 선명해졌다. 흔들림이 멎은 고요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얼굴울 보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세상의 속도에 맞춰 급히 달려가지 않아도 괜찮은, 나의 본래의 숨결을.
바람은 다시 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이 고요를 기억해야 한다. 고요는 바람이 쓸어간 자리에 남아, 가장 중요한 것을 되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