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의 시대, 책임은 누가 지는가

'강남 집 팔아 2차 전지 샀다면'에서 본 추종의 심리와 예언의 윤리

by 건강한 오후

“만약 그때 강남 집을 팔아 2차전지에 투자했다면….”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말은 단순한 투자 조언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단숨에 관통하는 듯한 확신의 매력이었다. 복잡한 경제 지표와 변덕스러운 시장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그 단호한 목소리는 얼마나 달콤한 구원의 메시지처럼 들렸을까. 확신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것이 틀렸을 때, 책임은 누가 지는가.


오늘날 확신은 정보보다 빠르게 전염된다. SNS와 유튜브는 의심과 토론의 공간이기보다 확신을 퍼뜨리는 거대한 확성기가 된 지 오래다. 알고리즘은 ‘아마도’나 ‘어쩌면’ 같은 유보적인 언어보다 ‘반드시’와 ‘무조건’이라는 단호한 예언을 더 멀리 실어 나른다. 검증되지 않은 확신이 하나의 ‘신화’가 되고, 그 신화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생겨난다. ‘밧데리 아저씨’ 신드롬은 우리 시대가 얼마나 강력한 확신에 목말라 있는지, 그리고 그 확신 앞에서 자신의 판단을 얼마나 쉽게 유보하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문제는 그 확신의 유통기한이 끝났을 때 시작된다. “강남 집을 팔라”던 선언은 수많은 이들의 삶을 흔들었지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장기적으로는 맞을 것”이라는 또 다른 예언으로 책임을 미래에 떠넘기거나, 시장 상황을 탓하며 훈계의 자세를 유지한다. 여기서 우리는 ‘말의 윤리’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말을 통해 영향력을 얻고 부를 쌓은 이들은, 그 말이 낳은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진정한 전문가의 언어는 확신이 아니라 신중함과 경계에서 출발한다. 섣부른 예언 대신 가능한 모든 변수를 제시하고, 가장 나쁜 시나리오를 경고하며, 최종 판단의 공을 상대에게 넘긴다. 그러나 ‘확신 팔이’들은 다르다. 그들은 책임질 수 없는 미래를 약속하며 추종자를 모은다. 예언이 틀린 세상보다 무서운 것은, 아무도 그 예언에 책임지지 않는 세상이다. 책임이 실종된 확신은 대중을 현혹하는 가장 세련된 폭력일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추종의 심리’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왜 그토록 구원자를, 해결사를, 모든 것을 대신 판단해줄 예언가를 찾아 헤매는가. 어쩌면 우리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힘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이제는 맹목적인 확신을 좇기보다, 스스로 ‘의심할 권리’를 회복해야 할 때다. 모든 것이 명쾌하게 설명되는 세계는 안전해 보이지만, 그곳에는 사유와 성찰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진짜 용기란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용기가 아니라, ‘나는 아직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