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 없는 사회에 대한 단상
【1】 김태호 PD는 천재다. 10년 넘게 Top class를 지킨다는 것은 다른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 단연 압도적 천재. 정해진 포맷 없이 제한된 소재(출연진과 작가)로, 주 or 격주마다 다른 스토리라인을 뽑아낸다.
무한도전의 시작이 지난 2005년부터니까… 회사원으로서 내 삶의 기간과 유사하다. 나보고 매주 or 격주마다 다른 보고서를 유사한 소재로 써내라고 했다면 1년, 아니 몇 달도 못 버티고 퇴사했을 것이다.
그런 자기 자신과의 극렬한 싸움, 또 까다로운 한국 네티즌과의 전투를 김태호는 해내고 있다. 그것도 거의 매주 성공적으로.
【2】 SBS가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를 극렬히 반대한 많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김태호”였을지 모른다.
CJ 그룹이 케이블 업체인 CJ 헬로비전을 팔고 얻은 1조 원의 돈을, 콘텐츠 업체인 CJ E&M에 투자한다고 해보자. 즉 tvN에 수천억을 쏟아붓는 게 가능해진다. 이명한 PD나 나영석 PD를 영입했을 때 썼던 것으로 알려진 30억보다 많은 100억 가량의 이적료를 김태호에게 안긴다면? 그리고 제작비로 연간 수백억을 쏟아부어준다면? 혹은 본부장 등을 맡겨서 예능에 대한 전권을 준다면? SBS는 몇 년 안에 지워질지도 모른다.
TV 프로그램 한 두 개가 방송사를 먹여 살리는 것을 우리는 “모래시계”의 SBS에서 보았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SBS는 모래시계 하나로 서울·경기 등으로 방송권역이 제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원년부터 흑자를 기록했다.
http://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512290805289110
【3】 SBS가 방송사로서 사활을 걸고, 목숨을 다 바쳐 SKT-CJHV 합병을 반대한 것을 수치로 간접 입증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CJ E&M은 광고 매출에 있어 SBS를 앞서고 있다. 이미 tvN이 SBS보다 앞선 채널이고, CJ E&M이 SBS보다 더 큰 방송국이다. 2015년 방송 광고 매출 기준으로 보자면, MBC > KBS > CJ E&M > SBS 순서. 2016년 1분기에서는 순위가 뒤바뀌어 MBC > CJ E&M > KBS > SBS다.
(출처 : http://naver.me/GdAW91aj )
【4】 무한도전 사상 가장 높은 인기를 끌었던 소재 중 하나는 “무한상사”였다. 나는 다른 많은 것보다 두 가지에 주목했다.
Q1. 평소 대비 많은 제작비를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가?
Q2. 상대적으로 평면적인 무한도전의 캐릭터로 어떻게 영화적인 재미를 줄 것인가?
두 가지에 대한 답은,
A1. 막대한 PPL(상품 활용 간접광고)
A2. 미생 혹은 다른 영화로 검증된 카메오
이 두 가지 답변에서 얻을 수 있는 힌트가 있다.
Hint 1. 천재 김태호 역시 MBC에 속한 회사원이라는 점 (CJ E&M 이적 가능성이 0는 아니라는 말)
Hint 2. 입체적 캐릭터였던 노홍철 혹은 회사생활을 해 봤던 정형돈의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점
【5】 노홍철을 다시 생각해본다.
김태호 PD만큼이나 엄청난 부담감이 주어지고, 또 모든 시공간이 압박으로 다가오는 무한도전의 출연자라는 것은 쉽지 않은 자리다.
젊은 층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만큼 사회적 책무도 다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광고도 나가면 안 되고 개인적인 사업을 할 때도 따가운 시선을 극복해야 한다. 자연인으로서의 삶은 거의 포기해야 하는 것. 그것이 무한도전을 지켜준 시청자에 대한 “의무”이자 그들이 사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멤버들 모두, 또 정형돈에 대한 무한한 존경심이 생긴다. 특히 정형돈의 자발적 하차가 깊게 이해된다. 더불어, 그 녀석 그러니까 노홍철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왜 그런 실수를, 왜 그 시점에, 왜... 왜... 왜...
【6】 음주운전은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했다. 분명 노홍철도 수 차례의 음주운전 경력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안 걸렸을 수 있다. 그 날이 재수 없었을 수 있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이 옳다. 잠재적인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빈틈이 없어야 한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어린이들과 젊은 시청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예능인, 방송인이라면 더욱 엄격히 적용되어햐 한다.
【7】 다만 그러한 원칙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셀럽(Celebrity)이라면 그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주어져야 한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경찰청장”이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어떠한 변명도 용서받을 수 없다. 권태호 한겨레신문 기자의 말을 옮긴다.
물론,
20년 전 일로 다시 처벌받을 건 아니고,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 상황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적절치 않고,
어쩌면 경찰 공무원 가운데 보통 이상으로
성실한 사람을 살아온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이러한 시국에서
경찰청장을 맡는 것은 옳지 않다.
https://www.facebook.com/taeho.kwon.925/posts/1230428306970200
【8】 김태호는 “무한상사”를 찍으며 PPL 없는 편집권의 자유와, 입체적인 노홍철 그리고 노련한 정형돈을 떠올렸을 것이다.
청와대의 입김이 드센 MBC가 아닌, 아낌없는(?) 제작비와 다양한 홍보를 통해 프로그램을 띄워주는 tvN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태호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수많은 PD들이 돈을 찾아, 아니 정확히는 자유와 꿈을 좇아 다른 방송사로, CJ E&M으로 떠날 때 아직 마봉춘을 지켜내고 있다. 길, 노홍철 등의 이슈가 터질 때마다 물러서거나 비껴서지 않고 유재석과 함께 머리를 숙이고 있다.
김태호 PD가 어린이 팬들과 청소년, 그리고 젊은 층에게 보여주는 원칙과 열정을,
우리네 경찰청장, 또 본인은 지적재산권 말고는 문화, 체육, 관광에 대해 잘 모르니 장관직을 수행하는 동안에 업무적으로 많이 배우겠다(스펙 관리?)라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 과한 요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