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대화와 삶, 가족의 의미
근래에 읽은 책 중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아이들과 지내는 하루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문장은 이런 것이다. “뛰지 마라, 밥 먹었으니 치카치카 하자, 주차장에서는 조심하자, 늦었으니 자야지...”
수학자 김민형 교수는 이런 대화를 아이들과 나눈다.
“T. S. 엘리엇, 바로 그 고양이 시들을 썼던 시인의 시에 나오는 구절이야.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거의 평생을 영국에서 살았어. 그의 시 대부분은 주인공 고양이인 그로울타이거나 럼텀터거처럼 발랄하지는 않고, 오히려 상당히 깊이 있는 철학을 많이 담고 있지.
하지만 아주 수려한 문장으로 쓰여 있어 깊이 생각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단다. 엘리엇의 시는 아무리 심각한 문장이라도 음악적으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다른 어떤 시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재의 수요일」이라는 그의 장중한 시를 몇 줄 소개할게. 분명 네가 아주 즐겁게 암송할 것 같구나.”
나 역시 윤동주와 서정주의 시를 많이 읽었다. 암송하기도 했다. 또 그들을 따라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내 아이들에게 그들이 쓴 시를 읽어준 적은 없다. 아이들이 즐겁게 시를 암송하는 분위기는 어떻게 만들어 낸 것일까. 책의 또 다른 이야기를 보면,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이 익힌 시들은 대체로 음악성이 뛰어나서 일단 듣기에 좋은 것들이 많았다. 소재는 자연인 경우가 많았고, 무언가 모호한 감정을 표현하는 시를 선호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무엇보다 마음을 울리는 내용은 계속 인생의 한 부분으로 남아 있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중에서는 슬픈 내용도 많았고 다소 어른스러운 주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T. S. 엘리엇의 『주머니쥐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지혜로운 고양이 이야기』처럼 익살스러운 것들도 많았다.
시와 관련된 게임도 꽤 많이 했는데, 지금도 가족끼리 모일 때면 하는 놀이가 하나 있다. 한 사람이 시를 하나 두고 한 줄씩 낭송하다가 구절을 하나씩 빼놓고 읽으면 다른 사람이 빠진 부분을 알아맞히는 게임이다.
가령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으면,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_____.’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꽤 긴 시도 완전히 익히는 수준까지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것 같다.”
온 가족이 모여서 TV를 보거나 음식에 반주를 기울이거나 윷놀이나 화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시를 가지고 게임을 하는 풍경은 도저히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가족들과 함께 그런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 낸 것일까.
이 책은 수학자 김민형 교수가 2005년에 2개월가량 가족을 떠나 유럽의 도시로 연구 여행을 떠났을 때 15세의 아들 오신에게 보낸 스무 통의 편지를 엮은 것이다. 2014년 『아빠의 수학여행』으로 출간된 것을 개정하여 이번에 새롭게 냈다. 편지를 통해 낭만주의 시인들과 뉴턴, 슈베르트, 또 아빠의 동료들과 나눈 추억을 함께 이야기하던 15세 아들은 성인이 되어 수학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학문과 문화와 예술이 어떻게 어린아이들에게 교육적인 내용으로 담겨서 전달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물론 다 읽고 나면 필연적으로 나 자신의 모습과 비교하게 되면서 작지 않은 충격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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