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아름다움, 아름다운 수학
대학 4년간 재수강을 3번 했다.
첫 번째는 회계사 형님들, 누님들이 즐비했던 경영대 「회계원리」 정운오 교수님 수업. 퀴즈 5회, 과제 3회, 시험 3번(중간고사가 2번)으로 기억나는데, 심지어 1학년 수강 과목이었다. 수강생 대부분은 회계사 시험 준비생이거나 이미 회계사이신 분들이었다. 뒤에서 등수를 세는 게 빨랐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경제학부 김선구 교수님 수업. 2000년 2학기, 홍콩과기대에서 입국하신 지 얼마 안 되셔서 류근관 교수님(전 통계청장) 댁에서 동가식서가숙 하시던 선쿠 킴 교수님은 핑크색 셔츠를 입으시고 4동 대형 강의동으로 뚜벅뚜벅 들어오셨다. 교수님의 한국 복귀 첫 번째 수업.
「경제수학」 첫 시간, Lecture 1, Linear Algebra를 칠판에 쓰시는 순간부터 수업이 끝나는 75분 동안 한 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학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또 어렵구나.
경제수학 기말고사는 4~5시간, 원한다면 끝까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시험이었다. 교수님은 Intuitive 하게 생각하면 쉬운 문제라 하셨다. Intuition이 ε(엡실론)뿐인 내게는 시험이 끝나는 그 순간, 군대 다녀와서 재수강 해야겠다는 다짐만을 남겼다. 속 못 차리고 제대 후 교수님 「게임이론」을 듣고 재수강을 직감했다. 교수님 수업을 세 과목 들었는데, 다행히 마지막 세 번째는 「조직 및 관리의 경제학」이었고(Incentive Scheme을 다루는), 시험이 없는 과목이라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받았다.
수학과 통계학의 세계, 학문과 Paper의 세계, 학생들에게 문제를 던져 주시고는 잠깐 나가셔서 피우시던 말보로 레드, 고민하실 때면 한 손을 턱 밑에 고이시고 마치 칠판을 뚫을 것 같은 눈빛으로 생각에 잠기시는 교수님의 그 눈빛이 너무 아름다웠다.
공부는 못 했던 제자이지만, 1년에 한 두어번 찾아뵙는다. 얼마 전에는 교수님께 약주도 사 올렸다. (교수님께서는 “너 이놈,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씀하셨다.)
이제 나도 교수님께서 학교에 처음 오셨을 때 나이가 되었다. 그만큼 나는 아름다운 일에 몰두하고 누군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