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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May 01. 2022

이소은과 그녀의 가족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자기 계발과 가족 이야기

  주말 동안 세 권의 책을 읽었다. 이소은의 책 두 권, 나머지는 그녀의 아버지 이규천 박사의 가정 교육 철학(“방목”)관련 책이다.


  이소은은 그녀의 책에서 자신을 “아티스트이자 미국 변호사, 자기다움을 지키며 유연하게 변화하는 사람”이라 표현한다. 중학교(1996년) 때 참가한 EBS 청소년 음악 프로그램에서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윤상의 안목을 사로잡아 데뷔했다. 12년의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의 연예계 생활 끝에 사회 문제를 법을 통해 해결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자원봉사 등을 통한 일회성 모금도 중요하지만, 제도적·정책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본인의 장점인 풍부한 감정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이성과 논리, 명확한 언어의 세계이자 동시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창의력과 열린 사고의 세계인 “법”을 공부하겠다 결심했다.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재수 끝에 입학하고(2009년), 뉴욕 소재 로펌에서 소송과 중재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ICC(국제상업회의소) 국제중재법원의 뉴욕 지부 부의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3살 차이의 친언니인 이소연과 함께 뉴욕에서 비영리 문화예술 단체(https://www.musicbytheglass.com)를 운영 중이다. “내 생애 마지막 직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이규천 박사의 작은 딸은 가수이자 미국 변호사가 되었고, 큰딸(이소연)은 예술고등학교인 인터로컨 예술학교를 거쳐 줄리아드 음대를 8년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하고 뉴욕시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신시내티 음대 종신교수를 거쳐 모교인 줄리아드 음대 피아노과 역사상 최초의 아시아 여성 교수로 임용(2022년)되었다. 이소은은 3살 딸 1명, 이소연은 8살 아들과 4살 딸을 두고 있다. 이규천 박사는 그전에는 강원도의 대학에서 교수를 하다가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재단 비리를 지적하다 파면되고 (나중에 대법원에서 승소), 도피성으로 온 가족을 이끌고 38세 나이에(1988년) 웨스트 버지니아대학으로 정치학 박사 과정을 위해 떠났다. 박사 과정 6년 동안 온 가족은 풍족하지 않은 생활을 견디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며 가족애를 키워나간다.



  여기까지, 어찌 보면 뻔할 수 있는 한 가족의 고난과 성공 스토리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의 독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요즈음의 소설은 혹은 에세이는 (혹은 언제나) 갈등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고난, 가족의 붕괴와 가난, 씻을 수 없는 과거의 절망과 현재의 고독,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삶에 대한 의지와 실패 등을 두루 다룬다. 자본주의와 급속한 현대화가 남긴 인간 소외, 돈의 노예가 된 차가운 도시를 말한다. 혹은 기존에는 일제 강점기나 전쟁 이후의 가난, 산업화 시기의 빈부 격차를 다루었다. 최근의 소설(특히 여류 작가)에서는 더 다양한 소재가 발굴되어 참신함을 주지만, 통상은 행복보다는 불행을 다루는 것이 문학 작품의 본질처럼 되어 있는 듯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Happy families are all alike; every unhappy family is unhappy in its own way)”는 톨스토이의 말(「안나 카레니나」)처럼, 행복한 가정은 너무 뻔한 서사라서 소설적 흥미를 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이소은 가족의 스토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사회 중산층으로 잘 살다가, 미국 유학에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딸 둘이 모두 성공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라는 내용이 주는 극적 긴장감은 높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곳곳에 배어 있는 가정 교육과 가족애, 자기 계발을 위한 축적의 시간 등은 담백한 백김치와 같은 감동을 준다.



  『딴따라 소녀 로스쿨 가다』 

(p.78) 어느 해인가 엄마가 생일 카드에 이런 글을 적어 주셨다. ‘네가 지금까지 자라면서 세상의 모든 기쁨을 엄마에게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너는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된단다.’
(p.81) 아빠는 네가 창피해하거나 자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 결과로 실망하지도 말아라. 아빠는 너의 모습 전부를 사랑하지, 한두 가지 것으로 사랑하진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라.”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 

(p.38) 최근에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그렇게 많은 일을 하며 살았어?” 엄마는 잠시 멈춰 생각하다가 말했다. “삶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어. 뭔가를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삶이란, 사는 거잖아.” (…) 로스쿨 2학년 내 생일날 엄마에게서 온 메일에 이런 구절이 있다. “소은아, 매일매일 꼭꼭 눌러서 살자.”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p.10) 그들은 물었다. 어떻게 두 딸을 키울 수 있었느냐고. 글쎄, 내가 정말 어떻게 키웠지? 상대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스스로 궁금해서 곰곰 생각해보니 딱 한 단어만 떠올랐다. 방목! 그래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은 이것이다. “잊어버려(Forget about it)”
(p.11) 나는 육아법이나 교육론 관련 책을 세심히 읽어본 적이 없다. 다만 다른 부모와 다름없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부모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순간순간 많이 고민했을 뿐이다. 내 사고, 언어, 행동의 출발점에서 중심을 잡아준 것은 언제나 ‘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아이들이 출세하기를, 성공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을 어떻게 내려놓을지 고민했다. 아내와 나는 최대한 그 고민을 내려놓고 살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이는 아이의 인생을 살아간다. 결코 내 인생이 아니다. 새롭게 세상을 살아갈 아이에게 이미 충분히 살아온 어른의 관점에서 욕심을 주입하는 것은 아이가 나아갈 대로를 샛길로 좁혀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른의 관점에서 욕심을 부리지 말자.’ 나는 이것을 내 판단과 언행의 기준으로 삼기 위해 노력했다.
(p.167) “오늘을 유익하게 잘 보내자,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불확실하니 오늘에 충실하자, 이렇게 다짐했다. 나를 붙잡아줄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를 지탱하게 해 준 최선의 사고는 이것이었다. ‘Here and 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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