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우리 모두 정세랑과 통일신라를 읽을 시간!
정세랑이 미스터리를 쓴다. 우연히 서점에 들러 초판 1쇄를 발견하고는 단숨에 읽어냈다.
빡빡한 삶을 살아가던 통일신라 시대 어느 대가족에서 몇몇 형제가 죽고, 또 당나라 유학을 얼마 앞두고 급사하게 된 오빠(설자은)의 대타로 (이미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 가족의 기대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남장을 하고 유학을 다녀온 주인공 여성 설미은. 그녀가 천년왕국 통일신라의 수도 금성(서라벌 혹은 지금의 경주)에서 다양한 미스터리를 수사한다는 무겁지 않은 수사물이다.
미스터리를 쓰는 행위에 관해 정세랑은 작가의 말에서 ‘몸을 바꾼다’고 표현했다. 『피프티 피플』에서 보여준 삶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시선으로부터』에서 드러낸 세대 간의 사랑, 오직 쾌감을 위해 썼다는 『보건교사 안은영』과는 결이 다르다. 뉴욕과 아헨, 오사카, 타이베이와 런던에 대해 쓴 사소하면서 풍성한 에세이인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수 없어』와도 역시 다른 느낌이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천재성.
표지의 뒷 날개에는 “정세랑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독보적 캐릭터, 설자은”이라는 (광고) 문구가 적혀 있다. 정세랑은 세계관을 구성하고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이어서 쓸 줄 안다. “1권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2권, 근간)”, “설자은, 호랑이 등에 올라타다(3권, 근간)” 뒤에는 …이 적혀 있다. 시리즈가 세 권이 될지 열 권이 될지 모르지만, 열 권을 넘기고 싶다고 작가의 말을 맺는다. 의도적인 것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보건교사 안은영』에 이어 Netflix 시리즈로 제작될 것 같다. (이미 진행 중일 수도!) 남장 여성의 캐릭터는 남녀 시청자 모두에게 흥미로운 소재이고, 미스터리나 수사극이라고 하지만 소위 피비린내 나기보다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전래동화처럼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 디자인도 센스 넘친다.) 소설로서는 드물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포함한 참고 자료가 14권이나 된다.
자, 이제 우리 모두 정세랑과 통일신라를 읽을 시간!
p.s. 오늘은 김초엽 장편소설 『파견자들』이 배송되어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노벨문학상 수상자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에 이어 네이버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3위와 4위는 정세랑과 김초엽이다. (5위는 아이러니하게도 1998년 출간된 양귀자의 『모순』) 한 때 온통 남성으로 가득했던 한국 문학계는 여성 소설가에게 그 영광의 자리를 완벽하게 내주었다. 이쯤 되면 또다시 박민규를 떠올리는 데, 2009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이후에 단 한 권의 소설책도 내지 않았다. (웹툰·웹소설 플랫폼 ‘저스툰’에 연재된 『코끼리』는 더 이상 저스툰에서 볼 수 없고, 2021년 완결되었으나 출간 소식은 없는 상황)
천재들의 소설을 읽을 독자의 행복감을 위해 정세랑도, 김초엽도, 김애란도, 또 한 때 나의 영웅 박민규도 더 즐겁고 더 신나게 써 주길 소망한다.
https://news.kbs.co.kr/news/list.do?sicd=478#1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00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