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우리의 다름은 공존할 수 있다.
세상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것들이 존재하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깊어질 때쯤 나는 어느새 나의 존재를 찰나의 순간 잊고 만다.
틀리다 다르다 라는 확정적인 언어의 속성들이 난무할수록 우리는 다양성을 잊고 만다. 그리고 다양성을 잊는다는 건 내 존재를 지탱하고 있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회색으로 규정하고 만다.
이는 실로 나 자신의 존재론 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어떻게 보면 뻔한 얘기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무지한 채로 세상을 살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노인과 여성 그리고 장애인을 꼽지만 그들이 왜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느냐고 하면 우리는 답변을 망설인다.
그만큼 피상적인 관념 주입된 관념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그 대상들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고 약자로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이건 무서운 일이다.
약자가 강자이기도 하고 강자가 약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순환적인 사고방식을 배제한 천편일률적인 확정적 사고방식이 무서운 이유는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특권의식을 양산하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개인적 이기주의 더 나아가는 집단적 이기주의를 창궐한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을 우리는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은 물음을 토대로 그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의 편견에 문제가 있다는 문제의식의 제기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20학번으로 대학원에 입성하며 마주친 현실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더욱더 경쟁은 심화되고 나는 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캠퍼스의 낭만은 고사하고,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는 일방적인 교육, 일방적인 시험 체계, 체계도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그 비대면의 캠퍼스 속으로 적응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억울했다. 내가 원한 학교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내가 왜 대학원에 왔을까? 하는 물음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때서야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우리가 정한 하나의 룰이 파괴되는 순간 다른 세상이 열린다. 하지만 어떤 세상이든 근본적인 가치는 동일하다.
룰은 변경될 수 있지만 대학원이라는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내가 대학원에 온 목적은 스스로 탐구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얻고 나면 모든 것은 정확해진다.
비 대면이든 대면 이든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 교육의 콘텐츠와 질이 나쁘다고 한들 그건 나만이 놓인 환경이 아니라 모두에게 놓여있는 제약조건인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똑같은 환경에서 각자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모두 개별적인 환경과 전체적인 환경 그 어느 지점 속에서 학습을 해 나가야만 한다.
이런 생각을 전제로 이번 일을 통해 돌아본 바는 코로나로 고통받는 사람은 누굴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나는 모두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과 교수님, 그리고 행정실에 근무하는 교직원, 병원과 환자, 확진자와 접촉자, 정부와 국민 모두를 개별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가해자 피해자를 규정하고 누군가의 문제로 귀결하여 끝을 보려 하지만, 문제는 그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약자의 경우 강자보다 지탱할 수 있는 힘 기반적인 힘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나 같은 경우도 코로나 시절 학점이 잘못 나온 것 때문에 행정실에 전화해 교수님 연락처에 대해 문의를 했음에도 연락처를 받지 못하고, 쪽지와 이메일로 수소문한 끝에 학점이 정정되기까지의 긴 시간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또한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는 문자를 받고 내 잘못도 아닌데 염려가 되어 선별 진료소에 갔는데 확진 판정을 받고 중간고사 기간 생활치료센터에 격리된 상태에서 수업과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이때 비대면 수업과 시험인 것이 그렇게 나에게는 행운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누군가에게 불편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배려일 수 있다는 점이 그때 느껴졌다.
공동체의 존속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개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집단적 속성을 도출하고 위기의 상황에 공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버팀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전까지 공동체는 낡아빠진 관습과 오래된 유물과도 같은 것을 나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전통적인 집단이라는 1차원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생활치료센터에 격리가 되어 생각해 보니, 무증상 감염자로 내가 제일 먼저 걱정이 되었던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안위였다
그들 또한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선별 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아 주었다 공동체의 힘 덕분에 난 동료들의 음성 판정 소식을 듣고 안도할 수 있었다.
내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상 생활치료센터에서 내가 받은 진료는 전무하고 카카오톡 앱으로 아침저녁으로 알림이 올 때마다 주어진 혈압계와 온도계 산소포화도 측정기로 내 현재 상태를 입력하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지급되는 7 Eleven 도시락으로 끼니를 연명하며 10일간 격리되어 있었다.
그리고 격리가 해제된 이후에도 음성 판정이 나올 때까지 선별 진료소를 2번이나 방문하며 나를 격리시키는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때 느낀 확진자로서 내가 느낀 감정은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받어야 하는가? 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나는 왜 주변 사람들 걱정을 먼저 하는가? 하는 물음이었다.
내가 얻게 된 답은 인간은 한자로 사람인자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혼자 존재할 수는 없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내가 규정하지 못하는 내가 있고, 그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과의 신뢰 속에 사회적 관계는 규정되고 그 신뢰가 없다면 나는 사회적 격리 상태와 다름없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세상은 무수히 많은 개별 랜덤 변수로 이뤄져 있고, 다만 내가 운이 없게 확정적 속성을 부여받게 된 것이다. 거기엔 어떤 감정도 어떤 계산도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비둘기가 아프다고 한다면 그 비둘기는 아픈 것을 알까? 그 비둘기 본인은 알 수 있겠지만 비둘기의 운명상 죽음을 그냥 받아들이는 조건인 것이다.
인간도 진화되지 않았다면 내 앞에 병을 극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한국이 아니라 인도에 있었다면 나는 무증상 확진자임에도 죽었을 확률의 개연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 아닐까?
고통의 의미와 감정을 이입하는 건 내가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효대사 해골물과 동일하다고 바라봐도 무방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이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바라본다면 우리는 서로 함께 살아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당장 내 앞이 고난의 연속이라도 그 고난을
내가 풀어갈 부분과 내가 풀 수 없는 부분으로 구분하고, 정말 고난인 것인지 그 속성을 분류해서 생각해 본다면,
몇 년 지나 그 때 그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으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제도 살았고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아간다. 당장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번 일을 통해서 삶의 다양한 관점을 돌아보며 20학번으로서 내 대학원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를 통해 모든 구분의 차별은 차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차별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고찰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코로나 시대에 우리나라의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다시 한번 이 국난을 극복하는데 크게 빛을 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더불어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생각을 우선하기보다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물을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나도 언제든지 약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 어린 시선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같은 것들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공동체를 지속시켜 줄 수 있는 하나의 기반적 속성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