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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omentum

얼어 죽어도 신축이라는 시대

인간의 편협한 가치 기준

by Bird

도시를 걷다 보면 언제부턴가 익숙한 풍경이 사라지고, 낯선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늘 가던 골목의 작은 가게는 사라졌고, 오래된 아파트는 흔적도 없이 부서졌다. 그 자리에는 반듯한 외벽과 반짝이는 유리창을 가진 신축 건물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말한다. “얼어 죽어도 신축.”


이 말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다. 신축이 곧 가치이고, 신축이 곧 성공이라는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다. 과거에는 오래된 것이 주는 안정감과 신뢰가 있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새것은 무조건 더 좋고, 더 비싸고, 더 원할 만한 것이 되었다. 낡은 것은 퇴출당해야 하고, 존재 이유를 증명하지 못하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 되었다.


신축을 향한 열망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부동산 시장의 논리, 경제적 불안,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얽혀 있다. 같은 동네, 같은 크기의 집이라도 "신축"이라는 이름표가 붙으면 가격이 치솟는다. 낡은 건물은 곧 가치 하락을 의미하고, 리모델링으로는 그 가치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러니, 사람들은 새것을 원할 수밖에 없다. 낡은 건물에서 사는 것은 경제적 패배처럼 여겨지고, 신축을 가지는 것이 곧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신축은 더 이상 오래가기 위해 지어지지 않는다. 빠르게 지어지고, 빠르게 낡아간다. 과거의 건축물들은 세월을 견디며 흔적을 남겼지만, 현대의 신축들은 언젠가 재개발될 운명을 안고 태어난다. 튼튼한 건축보다는 트렌디한 인테리어가 중요해지고, 10년만 지나도 다시 허물어야 할 듯한 구조들이 넘쳐난다. 신축을 향한 집착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도시의 풍경은 더 빠르게 변화한다.


이렇게까지 바꿔야 하는 걸까?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건물들이 교체되는 이 흐름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 우리는 정말 신축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신축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걸까?


도시가 바뀌는 속도만큼 사람들의 삶도 변하고 있다. 낡은 것을 보존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소비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때때로, 오래된 골목을 지나다가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몇십 년을 버틴 건물, 오래된 나무 계단, 시간이 켜켜이 쌓인 벽돌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는 묻고 싶어진다.


우리는 정말 새로운 것만을 원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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