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진이라는 용어적 속성을 통해 바라본다.
검진의 정의는 <의학> 건강 상태와 질병의 유무를 알아보기 위하여 증상이나 상태를 살피는 일
하지만 용어의 정의와 예문에서 주체와 객체가 누락되어 있다.
Who가 없다.
왜 주체와 객체가 예문에 누락되어 있을까?
나는 오늘 내 건강에 이상도 없음에도 반강제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국어사전에 대부분의 용어의 정의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주체가 누락되어 있다.
예전에는 주의 깊게 보지 못했던 부분이 오늘 나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되고,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 사회적 속성 때문인가?
원칙이 없는 그리고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무엇이든 관찰하고 다시금 물어봐야 하는데,
회사나 사회나 어느 곳에서도 그런 사람을 달가워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내가 이 공간에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내 존재를 규명하고,
내 나름의 용어적 정의와 그것을 통해 사회적 실상을 다시금 바로 보기 위해서이다.
금일 건강검진을 받는 와중에도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1> 내가 왜 검진을 받아야 하지?
2> 나는 회사의 소유물인가?
3> 그럼 회사가 선의적 차원에서 내게 호의를 베푼 것일까?
아니면 소모품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재산정하기 위해서일까?
4> 왜 회사에 내 건강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를 해야 하지?
5> 과연 이 건강검진의 주체와 객체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고찰을 하나씩 적어보기로 하겠다.
1> 내가 왜 검진을 받아야 할까?
회사에서 해당 검진을 받지 않으면 과태료를 본인이 물어야 한다고 한다.
근데 내가 동의하지도 않은 검진을 내가 받지 않겠다는데 왜 내가 과태료를 물어야 할까?
결국 나는 그 과태료 때문에 검진을 받으러 간 것이다.
2> 나는 회사의 소유물인가?
1> 번에서 그 과태료라는 것은 내가 내게 되어있는데,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검진을 신청하였다.
하지만 회사 시스템을 통해서, 그리고 내 검진 결과는 회사에 공유되게 된다.
회사 시스템 공지에 검진을 받지 않으면 본인이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 공지를 보고 나는 회사 시스템을 이용하여 검진을 신청했다.
그리고 내 검진 결과는 회사로 전송된다.
나는 회사의 소유물인 듯하다.
3> 그럼 회사가 선의적 차원에서 내게 호의를 베푼 것일까
아니면 소모품으로서의 나의 가치를 재산정하기 위해서일까?
이상하게 1>,2> 번의 내가 낸 답에 의하면 나는 회사의 소모품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 같다.
만약 회사가 선의적 차원에서 호외를 베풀었다면,
반 강제성을 가지고 나에게 공지를 보내진 않았을 것 같다.
내 의사에 대한 물음도 내 답변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나는 건강검진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4> 왜 회사에 내 건강상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를 해야 하지?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1에서 3번까지 답에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나는 회사에 귀속되거나 국가에 귀속되었기 때문에 조직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5> 과연 이 건강검진의 주체와 객체는 누구일까?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건강검진의 주체는 회사, 그리고 객체는 나
이렇게 정리를 해 보면 참으로 씁쓸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나에게 왜 그렇게 벽을 두고 생각을 하냐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이는 벽이 아니라, 건강검진에 하여 다시금 정의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성을 통해 건강검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회사와 나의 관계,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돌아보고,
이를 통해 나와 회사의 관계적 속성을 다시금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휘몰아쳤던 생각의 소용돌이가 이 글을 통해 나름 정리되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