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 같다.
작금의 현실의 모순과 그리고 민초들이 겪고 있는 극한의 상황들
그리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
그런 상황 속에서 그들을 수탈하는 악마의 정체
과연 누가 악마를 욕할 수 있을까?
악의 근원은 무지로부터 비롯되고,
그 무지는 소문을 만들며,
그리고 그 소문 속에 나타난 악은 진정 악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시스템
그것이 어쩌면 작금의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아닐까?
세월호 사건, 옥시 파문 등과 기묘하게도 오버랩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에 나온 주요한 대사들이 어쩌면 이 시대를 묘사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낚시할 때 무엇이 걸려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미끼를 삼켜버렸다.
그리고 누가복음 성경 구절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이 주요 대사를 종합해 보면,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 악마도 있고 선인도 있지만 그들이 악마로 생각되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실체가 없는 나조차 악마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개연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악마라는 실체는 누가 나에게 던진 미끼(실마리)가 되어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내 안의 욕심과 욕망이 그 미끼를 내가 물게끔 하여 나는 어느덧 내가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작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곡성에 나오는 대부분의 살인은 가족 대상이고,
그들은 주로 가장 믿었던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살인을 당한다.
가족을 살해한다는 것은 가장 믿었던 존재로 부터의 배제를 뜻한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존재적 기반의 파괴를 의미한다.
곡성에 흘러들어온 일본인과, 외지에서 온 무당
그들 때문에 곡성에서 살고 있는 내지인들은
그들의 존재적 기반이 파괴당하고 있음에도,
손 조차 쓸 수 없이 그들 스스로 파멸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국가나 시스템은 단순히 그들의 파멸을 독버섯에 의한 것이라
제단해 버리고 개인의 탓으로 그들의 죽음을 단순화시킨다.
공동체가 파멸되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존재적 기반마저 다른 이들에게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던 큰 사고나 사건들
그 속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음에도
우리는 그 일들을 모른 체하고,
어느덧 그 존재들은 우리 주위에서 악마의 모습을 숨긴 체
선인의 모습으로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내밀한 관계마저 파괴해 버리고,
스스로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잊고 살게 되는 건 아닌지~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게 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