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돌을 빼어 웃돌 괴다
위키피디아의 정의 : 프레임과 비슷한 개념으로 패러다임(Paradigm)이 있다.
패러다임은 프레임에 포함되는 개념이다. 즉, 프레임이 더 일반적인 용어이다.
패러다임의 정의는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이다.
통상 패러다임은 대규모의 인식체계를 말하고, 프레임은 소규모의 인식체계를 말한다.
프레임이 나타나는 데는 패러다임이 영향을 주게 된다.
천동설과 지동설이라는 지구과학적 지식에 따라 인간의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구조가 바뀔 수 없는 이유는 생각의 Frame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생각의 Frame은 닫혀 있을까?
그 이유는 우리는 어려서부터 교육 시스템과 매스컴
그리고 알게 모르게 자라온 환경을 통해 무수히 많은 관념들을 주입받았기 때문이다.
그 주입받은 관념들을 기초로 하여 우리 스스로 맞고 틀리다는 정의를 내려 내재화시켜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살아가는데만 익숙해져 버리게 되었다.
그 과정이 생략된 이유는 세상의 정의를 Feedback 하여 내재화할 만큼의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삶의 여유는 주어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항상 무언지도 모르는 대상에 쫓기듯 살아온 것 같다.
무언가 쫓기듯이 산다는 건 생존의 Rule을 어겨선 안 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내가 항상 놓여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일이다.
솔직히 따져보면 그 위기는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이지만,
그 허상이 자리잡기 위해선 누군가에게 위기라고
상시 주입받은 감정이
내게 위기가 아닌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여
내 몸의 메커니즘을 반응하게 만들었음이리라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른 채,
자기 스스로를 소진하 듯 사용하며,
정작 중요한 가치를 묵인하고 있는 건 아닐까?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며 느낀 점은 어떤 상황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라보는 사람의 지식과 그 사람의 경험을 통해 다채롭게 보이기도 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런 다양한 시각들이 좋다.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동경이랄까~
하지만 어쩌면 아직까지도 나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천동설적 입장인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럼 왜 그들은 천동설적 입장을 고수하며 변하지 않으려 하는 걸까?
변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내가 지키고 있는 내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라는 것은 생존과도 직결된 부분이기에, 어쩌면 우리 모두는 변화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 단순히 인간의 수동성 때문에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요인은 인간의 불안감과 수동성 때문이지만,
그 변화에 대해 내가 체감하여 느끼는 차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들이 변해서 나도 변한다.
그렇지만 그 후에 Next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Next에 대하여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 또는 조직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결정권자의 지시에 다를 수 밖에 없다.
의사결정권자들이 자신의 경험이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측을 할 때 경험론적 관점을 바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한 경험이 전부라고 하기엔, 세상의 변화는 빠르다.
그들은 해 묵은 관습과 자신만의 경험을 강요한다.
그리고 아쉽게도 책임을 지는 경우는 없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그 자리를 보존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얼굴이 두꺼운 사람들이
사회생활에서는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적이고 같이 일하는 사람과 공감하고
개인사를 배려하며, 같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당하거나 그들의 성과를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였다.
결국 마지막엔 버림 당했다.
작금의 상황도 위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인력이 줄면 윗사람들이 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밑에 사람 일 더 시킬 생각만 하고
인력이 없으니 스스로 일을 찾거나 일을 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아랫사람과 협력사 직원만 쥐어 짤 생각만 하고
회사는 준전시 상황이라고는 하는데 윗사람들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옆에서 자기에게 아첨하는 간신배에게 후한 점수를 주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체
바뀐 척하면서 아랫돌 빼서 웃돌 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