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영웅

판단이 마비된 인간들

by Bird

요즘 사람들은 고개를 잘 들지 않는다.

길 위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심지어 서로의 곁에서도 시선은 대부분 휴대폰 화면에 머문다. 그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보지 않기로 한 선택에 가깝다. 이미 충분히 지친 사람들에게 세상은 더 이상 감당할 대상이 아니라, 잠시라도 피하고 싶은 풍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길에 넘어져 있어도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사람들은 잔인해서 지나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살아봤기 때문에 안다. 한 번 멈추는 순간 하루가 더 무거워지고, 손을 내미는 순간 설명과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을. 오지랖을 부려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그 끝에 돌아오는 것이 감사보다는 피로였다는 사실을 더 또렷이 기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명해졌다. 영웅이 되기를 포기하는 대신, 오늘을 무사히 끝내는 쪽을 선택한다. 남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의 삶도 더 망가지지 않게 지키는 태도. 그것은 비겁함이라기보다, 이 시대가 요구한 생존 방식이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지쳐 있고, 모두가 책임을 피하는 법을 배운 사회에서는 기술이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중심으로 들어온다. 기술은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공감도, 망설임도 필요 없다. 알고리즘은 대신 결정해 주고, 시스템은 대신 처리해 준다.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도한다.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해방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때 기술은 인간을 정복하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판단을 내려놓게 만들 뿐이다.

무관심해진 사회에서 기술은 강제가 아니라 편의의 얼굴로 다가온다. 무엇을 볼지, 누구를 도울지, 어디까지 개입할지를 시스템이 정하고, 인간은 그 결과를 따를 뿐이다. 책임은 흐릿해지고, 선택은 자동화된다.


그렇게 영웅은 사라진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피곤해서.

그 자리를 완벽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이 채운다. 문제는 그 시스템이 효율적인가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지 묻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데 있다.


기술이 인간을 쉽게 정복하는 시대는, 기술이 특별히 악해서가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역할—판단하고, 공감하고, 개입하는 일—을 너무 오래 부담으로만 여겨온 결과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영웅이 아니다.

잠시 멈춰 서서 화면에서 고개를 드는 사람,

피곤함을 알면서도 한 번쯤은 책임을 감수해 보는 사람.

그 작은 선택이 남아 있는 동안만,

기술은 아직 인간의 도구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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