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마을 화제

침묵의 밤

by Bird

구룡마을의 불은 밤에 시작됐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실 그 불은 오래전부터 천천히 타오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빈집 하나에 불이 붙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었다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하지만 그 빈집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언젠가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 미처 가져가지 못한 삶의 흔적,

그리고 “다음은 내 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불길은 생각보다 빠르게 번졌다.

판자와 합판,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이어 붙인 집들은

도시의 속도보다 빠르게, 도시의 무관심보다 빠르게 타들어 갔다.

소방차는 도착했지만, 적극적이지 않았다.

접근이 어렵다는 말, 위험하다는 말, 절차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물보다 먼저 흘러나왔다.


누군가는 묻는다.

정말 늦장대응이었을까, 아니면 묵인이었을까.

하지만 그 질문은 현장에 남은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단 하나,

아침이 왔을 때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이다.


무허가 판잣집에 살았다는 이유로

이들은 늘 임시적인 존재였다.

주소는 있었지만 권리는 없었고,

사람은 있었지만 제도 속에서는 공백으로 처리되었다.

그래서 불은 집만 태운 게 아니라

“원래 없던 사람들”이라는 낙인을 다시 한번 찍어버렸다.


길바닥에 앉아 멍하니 연기를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에는

분노도, 울음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체념만이 남아 있었다.

이 도시는 늘 그렇게 말해왔으니까.

여기는 언젠가 없어질 곳이라고,

당신들의 삶은 잠시 머무는 오류라고.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돌린다.

출근길이 막힐까 봐, 뉴스가 불편할까 봐,

괜히 연루되고 싶지 않아서.

무관심은 잔인함이 아니라 생존 기술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도시는 우리에게 가르쳤다.

보지 말 것, 묻지 말 것, 느끼지 말 것.


그러나 불은 묻지 않는다.

허가를 받았는지, 세금을 냈는지,

이곳에 살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그저 가장 약한 곳부터 태운다.


구룡마을의 화재는 사고가 아니다.

한 개인의 방화로 끝낼 수 있는 사건도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방치된 질문이

불꽃의 형태로 튀어나온 것이다.


“이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집이 없는 사람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의 삶이 타는 냄새에 무감각해졌는가.”


불은 꺼졌지만,

그을음은 아직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냄새는,

애써 모른 척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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