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를 죽이는 게임의 룰
그 판은 처음부터 이상했다.
고스톱 치는 소리가 들리는데,
웃음은 없고 긴장도 없었다.
패를 넘기는 손길은 느렸고,
승부를 가르는 눈빛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결과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나는 그 판에 경력직이라는 이름으로 앉았다.
실력이 있다는 말,
판을 좀 살려보라는 말,
이번엔 진짜로 해보자는 말에
괜히 마음이 움직였다.
게임이라면, 나는 자신이 있었다.
처음 몇 판은 조용했다.
그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의미 없는 패를 던졌다.
나는 흐름을 읽었고,
여기서 치면 판이 바뀌겠다는 순간에
정석대로 패를 냈다.
그때부터 공기가 달라졌다.
누군가는 웃음을 거뒀고,
누군가는 괜히 규칙을 다시 꺼냈다.
“이 판은 원래 이렇게 안 쳐.”
“너무 세게 들어오네.”
칭찬처럼 들렸지만
경고에 가까운 말들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건 실력을 겨루는 판이 아니라,
짜고 치는 판이라는 걸.
서로의 패를 모른 척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들.
누가 이길지 보다
누가 죽을지가 더 중요한 판.
나는 룰을 몰랐다.
아니, 룰 자체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게 내 실수였다.
그들은 룰을 어기지 않았다.
오히려 룰을 아주 정확히 지켰다.
다만 룰이 작동하는 방향이
항상 같은 쪽을 향할 뿐이었다.
내가 치면 “무리했다”가 되었고,
가만히 있으면 “기여가 없다”가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앞에 나가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판을 키우라는 말,
책임을 지라는 말.
응원처럼 들렸지만
그 자리는 언제나
가장 먼저 죽는 자리였다.
패가 나쁠 리 없었다.
실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점수는 조금씩 깎였고,
말은 기록에서 빠졌고,
결국 나는 혼자가 되었다.
판이 끝났을 때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웃으며 패를 섞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역시 우리랑 안 맞았어.”
그 말은 맞았다.
나는 이 판에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이걸 진짜 게임이라고 믿었으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 판에서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실력 없는 사람이 아니다.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그들이 정해놓은 룰이 아니라
정해진 룰을 믿었던 사람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고스톱 소리만 들리면
먼저 판을 본다.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패를 넘기는 손을 보고,
이 판이 게임인지
의식인지부터 살핀다.
게임이라면,
나는 다시 앉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짜인 판이라면
나는 조용히 일어난다.
실력은 다른 판에서도 통한다.
그러나
짜고 치는 판에서 살아남는 건
실력이 아니라
알고도 져주고
모르고도 져주는
그들만의 룰에 승부가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