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양들의 침묵

by Bird

옛날 어느 조직에 양치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늘 언덕 위에서 외쳤다.


“늑대가 온다!”

“지금 변하지 않으면 다 죽는다!”

“이제는 예전 방식으로는 안 된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 달려왔다.

괜히 겁을 먹었고, 괜히 분주해졌다.

하지만 늑대는 없었다.

소년은 웃었고, 사람들은 머쓱해하며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도 소년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번엔 진짜다.”

“이번엔 다르다.”

“이제는 행동해야 한다.”


사람들은 점점 깨닫는다.

이 외침은 경보가 아니라 의식이라는 걸.

마을을 지키기 위한 신호가 아니라,

소년이 자신의 자리를 증명하기 위한 소리라는 걸.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달려오지 않는다.

각자 자기 양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괜히 나섰다가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괜히 믿었다가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그러던 어느 날,

정말 늑대가 나타난다.


이번엔 소년도 웃지 않는다.

목이 쉬도록 외친다.

“이번엔 진짜다!”

“정말 위험하다!”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또 시작이군.”

“늘 하던 말이잖아.”


그리고 그날,

양들은 잡아먹힌다.

소년도 다친다.

하지만 마을은 이렇게 정리한다.

“그 애가 관리 못 한 거지.”


조직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위에서는 늘 말한다.

“변해야 한다.”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늦는다.”


처음엔 누군가는 믿고 움직인다.

프로세스를 바꾸고,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자기 자리를 걸고 나선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침은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늑대는 오지 않고,

조직은 멀쩡하다.

움직인 사람만 다친다.


그래서 학습이 일어난다.

믿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학습.


그러다 진짜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

시장도, 기술도, 규제도 바뀐다.

이번엔 정말 늑대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조직은 스스로를 이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다.


“변화는 말이고,

행동하는 사람만 손해 본다.”


결국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늑대를 부정한 사람이 아니라,

늑대 이야기를 믿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이 동화의 교훈은

아이들이 배우는 것과 조금 다르다.


정직하지 않은 양치기 소년이 문제인 게 아니다.

말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

늑대가 없을 때도 외치고,

늑대가 와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


그래서 성인이 된 우리는

이렇게 바꿔 읽어야 한다.


늑대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조직에서는

외침보다 먼저

누가 다칠지를 보라.


그 답이 늘 같다면,

그곳에서 외침은 경고가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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